가을 소나타 / 청송 권규학
가을을 축복하는 비가 내립니다
빗살로 사선을 긋는 가을비
신랑을 위해 단장한 신부처럼
사랑비로 예쁘게 흩날립니다
우산을 받치고 들길을 걷습니다
들녘엔
들꽃 향기 가득하고
길섶엔
코스모스가 살랑이고
키 큰 억새꽃의 군무(群舞)와
키 작은 풀꽃의 해맑은 미소
곳곳에서 가을을 축복합니다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입니다
새들이 서로 사랑을 속삭입니다
강물이 찰랑이며 나를 부릅니다
가을과 함께 살아가는 삶들이
행복이요 축복이며 은총입니다
정녕 가을은 사랑의 소나타입니다.(201022)
코로나 시대!
일도, 삶도, 일상도…, 모든 게 힘들고 고달픈 세상입니다.
감염병을 옮기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생활의 불편함에 대한 짜증 섞인 불평과 호소(呼訴)가 주를 이루고
일상이 '귀차니즘화'되는 게 눈에 띄게 나타나는 요즘입니다.
며칠 전, 지인(知人)에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화기를 통해 전해지는 지인(知人)의 목소리…!
'선생님은 코로나가 참 좋지요?'
얼토당토않은…, 참으로 황당(?)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외부 활동이 제한된 요즘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글쓰기에 좋은 조건'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문득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란 소설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페스트(흑사병)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고자 페스트(흑사병)가 퍼진 '피렌체'를
탈출하여 피에솔레의 시골 마을의 별장으로 온 일곱 명의 젊은 여성들과
품행이 단정한 세 명의 남성들로 이루어진 열 명의 무리가 14일의 기간 중
2일을 제외-일주일에 하루는 가사를 위해서, 하루는 종교적인 이유로-한 열흘 동안
각자 매일 한 가지씩 나눈 100편의 이야기-사랑에 관한 음탕한 이야기,
에로틱과 비극적인 것, 기지, 재담, 짓궂은 장난, 세속적인 비법 전수 등-를
기록한 소설 형식의 책이었지 싶습니다.
감염병이란 상황이 소설의 내용과 무척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사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고립과 차단은 감염병의 위험과 불안을 떨치고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혼자 있다고, 고립되었다고 해서 글이 잘 쓰여지는 건 아닙니다.
사람에겐 저마다의 특별한 성향이 있기에
혼자 틀어박혀 있다고 해서 무조건 글이 잘 써지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고립된 조건이 오히려 글쓰기에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 역시 혼자 있는 걸 즐기는 편이 아니기에
처음 얼마 간은 그런대로 책 읽기와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방콕이나 집콕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울과 고독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런 느낌은 대부분 주변 사람들의 공통된 감정인 듯합니다.
갑갑함을 떨치려고 가끔은 시골 들녘을 걸어도 보고,
가까운 산이나 강둑길을 걷기도 하는 등 나름의 방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남들은 그렇게 생각할런지도 모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무조건 고립된 공간이나 밀폐된 장소만 있으면
글이 술술 써지는 줄로 착각할 지도…!
물론 시끄럽게 북적대는 곳보다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는
조용한 장소가 더 어울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발적인 환경이 아닌 외부의 압력에 의한
강제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피부에 와 닿을 때마다
갑갑함과 답답함이 밀려들어 글쓰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늘 입버릇처럼 강조한
'입으로 쓰는 글이 아닌, 발로 쓰는 글쓰기'를 실천에 옮겨야 했습니다.
집안에서 쓰는 글은 그저 머리에서 나오는 얄팍한 지식의 다른 형태이지만
두 발을 움직여 이곳저곳 여행을 하며
자연으로부터, 가슴으로부터 체화된 생생한 지식을 시어로 활용할 때에서야
비로소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글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이곳저곳을 다녀보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골 재래시장을 두 발로 밟아보고서야
내 안의 내가 아닌,
내 삶의 울타리 너머에 있는 새로운 세상을 불러올 수 있었습니다.
마스크 몇 장 두둑이 챙겨 넣고 산책을 나섭니다.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코로나의 공포 앞에서 믿을 건 오로지 마스크 밖에 없기에…!
비록 표정까지는 볼 수 없지만 지나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걷는
발걸음마다 즐겁고 상쾌함이 묻어납니다.
어쩌면, 두 발로 활보했던 그 시간들이 땅거미가 깔릴 즈음이면
발로 쓰는 글이 되어 나를 찾을 것이란 걸 알기에 더욱 행복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창밖엔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있고 풀벌레 소리 정겹습니다.
그들의 울음소리를 벗 삼아 쓰는 글 속에 더 튼실한 가을이 익어갑니다.(20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