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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 서 평

정한숙의 '금당벽화'

 

 

정한숙의 '금당벽화'를 읽고

 

작가 「정한숙」은 1924년 평북 영변에서 출생했다.

1948년 단편 '휴가'가 「예술조선」에 입선하여 문단에 데뷔하여

같은 해에 '전관용, 정한모' 등과 함께 '주막'이라는 동인을 결성한다.

그는 1950년에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오랫동안 문헌을 연구하고 소설을 쓴다.

1953년 조선일보 현상문예에 중편 '배신'이 입선된 이후 '황진이', '전황당인보기',

'암흑의 계절', '끊어진 다리', '금당벽화' 등을 발표한다.

 

'담징'은 고국 고구려를 떠나 도왜(渡倭)하기 위해 백제를 거쳐 신라에 머문다.

수 문제의 원정 이후북방의 풍운은 날로 거칠어 간다.

'담징'은 이 때 조국을 등진다는 것이 하나의 도피라고 생각되어 도왜(渡倭)를 망설인다.

불전에 서면 승(僧)이요, 화필을 잡으면 화공(畵工)이요, 조국의 품에 안길 때는

조국의 아들인 '담징'은 국민적 의무보다는 국제적 신의를 가지고 도왜(渡倭)한다.

도왜(渡倭)한지 2년 '금당벽화'를 그리기로 한지 벌써 칠팔삭이 지났건만,

그는 오늘까지도 조국의 안위에 대한 염려와 자책의 뉘우침 때문에 화필을 잡지 못한다.

그는 왜승(倭僧)들의 욕하는 소리를 못들은 바 아니지만 붓을들고 벽면에 서면

구슬같이 아롱진 열반의 환상은 고사하고 피비린내 풍기는 조국의 현실만이 떠오른다.

그는 몇 번이고 조국으로 돌아갈 것을 절의 주지에게 간청한다.

주지가 펄쩍뛰자 그는 붓을 들 수 있는 시기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그는 불길한 생각을 감출 길이 없다.

이는 명장 을지문덕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위기에 처한 조국으로부터 도피한 양심의 가책 때문이다.

그는 꿈속에서 육모방망이를 든 왜승(倭僧)들에게 쫓기어 어둠 속을 달음질친다.

그는 조국을 배반한 벌이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 그는 왜승(倭僧)들의 몽둥이를 맞고 쓰러진다.

이마의 상처를 더듬는 순간 벌떡 잠에서 깬 그는 꿈일망정 신세를 지고 있는 주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금당으로 간 그는 불당에 불을 붙이고 합장을 하나 불상의 자비로운 얼굴은 감히 쳐다 볼 수가 없다.

살기가 도는 눈빛을 하고 금당 밖으로 나오던 '담징'은 법릉사 주지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주지는 을지문덕이 수양제의 200만 군대를 물리친 것을 알려준다.

'담징'은 비로소 합장한 손 끝에서

자비로운 불심을 느끼고 터져오르는 환희를 경건한 불심으로 바꾸어 벽화를 착공한다.

붓을 든 그의 손길이 무학같이 움직인다.

동방을 제패한 고구려의 환희는 관음상의 미소를 자아내게 하고 오랑캐의 죽음은

그들을 조상하는 자비심을 불러 일으켜 그는 온갖 정성으로 벽화를 그린다.

그는 일찍이 조국에 두고 온 이름모를 여인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는 열반의 세계가 아니라 사바의 세계를 모방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화면을 지워버리고 싶으나

마지막 속세에 대한 미련인 듯 그 미간에 일점을 그린다.

붓을 놓고 화면을 보자 열반의 관음상이 그려져 있다.

저녁노을이 물들기 시작하자 열반의 세계에 도취한 주지가 합장한 채 꿇어 엎드린다.

벽면엔 관음상의 점화시중의 미소가 빛나고 묵승(墨僧)들의 합장 배례가 끊이지 않는다.

 

작가의 이 작품은 공간적 배경을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조국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평화로운 불전에

두고 있지만, 담징의 내면에서는 갈등과 번민이라는 내적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공간이다.

시간적 배경은 금당의 벽화를 그려야 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자신이 떠나오던 상황과

당시 조국의 현실이라는 과거가 삽입되고 다시 벽화를 그리는 현재로 돌아오는 일상적 시간이다.

어릴 때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고 또 입이 닳도록 암기하고 외웠던 '담징'의 '금당벽화'를 소설로

접하고 보니 비록 허구와 실제의 차이는 느끼지 못했을지라도 새로운 영상미를 느낄 수 있었다.

고구려인으로서 바다 건너 일본 땅 법릉사의 금당에 벽화를 그린 '담징'을 통해

우리 민족의 깊은 예술성과 그 수준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으며,

새삼 한민족으로 태어난데 대해 큰 자긍심을 느끼게 한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