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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 서 평

제임스 클리크의 '카오스'

 

 

제임스 클리크의 '카오스'를 읽고

 

 

'카오스' !

제목부터가 생소한 이 책을 읽게된 동기는 말 그대로

'카오스'란 미묘한 주제를 명쾌하게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 날 대중문학과 비평이론계에서

크게 관심을 끌고있는 '카오스'란 이론의 개념을 바로 잡을 수 있으리란 기대감을 갖고 출발하였다.

 

이 책의 작가 「제임스 글리크」는 미국의 뉴욕 시에서 태어났으며,

뉴욕 타임즈의 편집자 겸 기자로 일하면서 '카오스'를 발표하여

세계적인 과학 저술가로 명성을 확고히 하였으며, 1992년에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일생을 다룬 '천재'를 발표해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이 책은 소설이나 에세이 처럼 어떤 줄거리 형식으로 엮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과학,

즉 '카오스 이론'이란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이라서 읽기에 약간은 딱딱하고 따분했다.

처음에 가졌던 생소한 제목이 주는 분위기와는 다르게 '카오스 이론'은 듣기만큼 흥미롭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카오스 이론'이란 이름은 과학계에서 전적으로 무작위적이며 이해 불가능한 현상에 대해

무언가 확고한 지식을 발견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제1장에서 '카오스 이론'의 잠정적인 정의를 내리고 기술적으로 상세한 설명과 개념의 파악에 필요한

여러 가지 예를 살펴봄으로써 '카오스 이론'이 무엇인지 간단히 논의하였다.

'카오스'가 이해할 수 없는 뒤죽박죽한 혼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카오스 이론'의 이론은 종래에 사용된 잘 정의된 이론을 의미하지 않음을 명심하여야겠다.

모든 '카오스' 현상을 설명할 단순하고 명확하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은 없으며,

이는 여러 이론적 모델이나 수학적 도구, 실천적 기술을 엮어 묶은 것이다.

 

제2장에서는 이론과 실제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음을 논의하였다.

초기 조건에 민감한 의존성은 우리가 갖는 본질적인 이론적 신뢰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것도 아니며,

계산상의 불편함을 제기하는 것도 아니다.

반면 '카오스 이론'은 작은 오차가 작은 것으로 남아 있다고 믿는 방법론의 재평가를 요구한다.

 

제3장에서는 '카오스 이론'에서 잘 적용되는 결정론적 개념을 언급하고

초기 조건에 민감한 의존성을 보이는 단계에서 제기될 수 있는 가능한 도전들을 짚어 보겠다.

'카오스 이론'은 예측성이 결정론과 별개의 것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할 뿐만 아니라

양자 역학적 고려와 결부시켜, 현대 물리학의 범주에서 결정론이 갖는 진지한 의문을 제기한다.

 

제4장에서는 '카오스 이론'을 통해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폭넓은 의문에 답한다.

과학에서 이루어진 최근의 발전이 과학적 이해를 특징짓는 철학적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거나

수정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확신한다.

 

제5장에서는 비선형 동역학의 초기 역사에 관한 역사적이고 사회학적인 의문점을 다루었다.

왜 최근에 와서야 '카오스'계에 관한 탐구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반세기가 넘도록 탐구되지 않은 '카오스'에 대한 몇 가지 전제조건을 논의하고

이러한 경우를 설명하기 위하여 제안된 몇 가지를 설명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과학사에서의 보다 세분화된 계획성과 문화적 요소가 때때로 과학분야에서

수학적 도구를 선택하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철학적 위치에 대한 논쟁을 설명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과학 관련 도서여서 그런지 뭐가 뭔지 잘 알지 못하는

전문단어들이 많아 읽기가 불편하고 힘들었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이나 현대 우주론 같은 도서와 마찬가지로

나름대로 관심을 기울일만한 내용들도 제법 있었다.

또 사회의 일상생활을 과학적으로 다룬 이 책 '카오스'를 읽으면서 그에 대한 의문점을

다소나마 풀게 되었고, 제목이 주는 호기심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매우 일상적인 현상에서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언뜻 드러내 보이거나 명백한 무질서에 내재된

질서를 밝히는 '카오스'는 언론에 오르내리기를 좋아하는 과학자들이나 그들을 추종하는 이들의

새로운 장난감이 아니며, '카오스'가 우리가 알아내려고 하는 바, 우리가 자연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 시사하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일 것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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