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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 서 평

이외수의 '꿈꾸는 식물'

 

이외수

 

'꿈꾸는 식물'을 읽고

 

이외수 작가는 그의 작품세계는 물론이려니와 외모에서 풍기는 특이한 인상과 기이한 행적으로

사람들에게 더욱 잘 알려진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전작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은 밤늦은 시각에 잠을 청하고자 호기심 반, 관심 반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책 속으로 빠져들면서부터 오히려 일찍 잠자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 소설의 무언가가 나를 끌어들여 밤을 새워가며 읽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소설은 독자들의 매력을 쉽게 끌 수 있는 멜로물도 아니고,

스릴이나 긴박감이 넘치는 장쾌한 액션이 가미된 한마디로 아주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은근히 나를 매료시키는 뭔가가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대학생 박민식은 장미촌 포주 집의 막내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중학 1년을 중퇴한 전직 화물트럭 운전자로서 무식할 뿐만 아니라

그저 '배짱 좋아서'하는 직업으로 여기며, 가만히 앉아서 여자들이 바치는 돈과 술로 세월을 보낸다.

아버지를 쏙 빼어 닮은 큰 형 박민두 역시 무식하고 돈만 아는 인간으로서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세 번이나 퇴학을 맞고 소년원까지 다녀온 망나니였다.

그는 해병대를 제대하고 돌아와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주고 있는데 하는 일이라고는

여자들에게 잔소리하는 일과 행패부리는 남자들을 쫓아내는 일이다.

그러나 작은 형인 박민기는 어려서부터 달랐다.

그는 고등학교까지 나온 인텔리인 어머니의 정신을 이어 받아 천성이 항상 깨끗했고

학업성적 또한 우수하여 항상 어머니의 열성적인 비호 속에서 자랐으며,

심지어 무식한 아버지와 형까지도 판검사가 될 것이란 기대를 건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신장염으로 죽자 본의 아니게 매독까지 걸렸고,

입시에 실패한 후 집을 나가 버린다.

4년 만에 돌아온 작은 형 민기는 이미 정신분열증 환자가 되어 있었다.

산에서 은자를 만나 별들과 교신했다던가, 영계로 들어가겠다는 등,

그의 정신은 이미 모진 세상을 등지고 있었다.

화자(話者)인 주인공 민식도 작은 형이 그리된 이후 아버지의 관심과 기대가 그에게로 쏠리자

어쩔 수 없이 지방 국립대법학과를 다니고 있지만 강의는 엉뚱한 것만 듣는다.

 

그에겐 이미 가족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

아니 벌써 가족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이기도 했다.

큰아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화녀 명자와 동거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 명자는 사귀던 여자와 헤어진 민식이의 동정을 뗀 여자였다.

이것은 우리의 윤리의식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설정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민식은 항상 고뇌하지만 그나마 그에게 새로운 활력을 넣어주는 인물은

비록 미쳤다고는 하나 작은 형이었다.

그런데 작은 형은 큰 형의 학대 속에서 점차 증세가 심해져갔고,

큰 형은 돈에 미쳐 제대로 된 인물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져만 간다.

큰 형은 돈을 벌기위해 화녀들과 몰래 포르노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결국은 성욕이 억제된 작은 형이 도움이 안되자 흥분제까지 사다 먹이며

변태적인 장면을 찍으려고 하다가 사진을 찍기 위해 데려온 사냥개의 이빨에

작은 형은 갈가리 찢기어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지고 만다.

이 사건으로 아버지와 큰 형은 구속되고

집의 화녀들도 뿔뿔이 흩어져 이제 집에는 박민식 밖에 남지 않았다.

민식은 이 비린내나는 현실을 벗어나려고 오랫동안 생각해온 일을 실천에 옮긴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은 다음 작은 형이 만든 천체망원경의 대안렌즈 하나만 남겨놓고

집에 불을 질러 나머지 모두를 불태워 버렸다.

그 랜즈는 그에게 있어 정신적인 불씨였던 것이다.

 

이 작품은 감각적 표현이 뛰어나고 재치있는 문장이 많다.

그러나 이 탁월한 표현 속에 빠져들어서는 안된다.

작은 형의 정신분열을 현실사회의 초월로 그린 것은 높이 평가되어야 하지만,

정희와 불장난에 가까운 사랑을 나누다가 모노드라마를 하는 연극인에게 넘겨주는 일은

소설의 주제와는 어긋나는 일인 것 같다.

그러나 '베토벤'과 '앨비스'를 같이 취급할 수 없다고 문을 닫을 때까지

끝내 순수를 고집하며 클래식을 틀어놓는 음악감상실 주인이며,

국전에 작품을 내지 않는 것을 큰 자랑으로 알며 굶어 죽을 각오를 하던 무명화가 선배가

끝내 미군부대 앞에 초상화 가게를 내고 외로운 검둥이 얼굴만 그리는 등,

썩어빠진 세계에 대한 증오 속에서도 그것들을 지키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금권만능주의에 깊이 빠져있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있어 이 작품은

돈만 아는 이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느끼게 하고,

뭔가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갖도록 하는 '제법 괜찮은 소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