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여자는...'을 읽고
뭔가 기록해 남기기를 좋아하고 또 나름대로 책을 가까이 하고 있음을 자부해 온 나는
특별히 바쁜 업무에 쫓기지 않는 한, 불혹의 연륜을 쌓은 지금까지도 최소한 1개월에 1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
하지만 최근 출간되는 흔히 X세대 작가들에 의해 쓰여진 소설작품에 대해 적잖게 실망한 부분이 있었다.
물론 나의 독서량이 무엇하나 거칠 것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방대하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성급하게 뭐라고 평한다는 것은 주제넘은 일인 줄 알지만,
소설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뭔가 공허하다는 느낌만큼은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 읽었던 작품 중에는 내용이 알차고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소설다운 소설 또한 쉽사리 찾아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얻은 경험으로는
내용이 괜찮은 책은 첫 페이지만 읽으면 그 느낌부터가 다르다는 것이다.
소설일 경우에는 첫 페이지만 읽으면 이 소설이 통속적인 연애(애정)소설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 괜찮은(?) 소설인지를 금방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접하면 제목과 차례를 우선 훑어 본 후 첫 페이지만을 읽는 습관이 생겼다.
그것은 나만의 버릇이긴 하지만 페이지 수가 적은 단편일수록 첫 페이지나 끝 페이지의 내용과 형식이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결론에서 택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첫 페이지만 읽는 와중에 좋은 소설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책이 바로 '김선미'의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이란 작품이다.
'김선미'의 작품 중 '봉숭아'와 그 외의 작품을 서점에서 몇 권 사 두긴 했지만,
작품용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아직은 읽을 엄두를 못내고 있어 작가의 오래된 작품을 논한다는 것이
우습게 보이기도 하지만, 좋은 작품을 읽은데 대한 위안을 얻고자 작품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견을 남겨 본다.
'김선미'의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이란 작품은
어렸을 적 잃어버린 동생과 현재 자신의 아내가 일치하는데서 일어나는 주인공의 고통을 그리고 있다.
작가가 자평(自評)에서 실화에 바탕을 둔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어서 그런지
서술에 있어 현실감이 넘쳐 통속적인 애정소설에 등장하는 어눌한 사건의 설정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김선미'는 이름으로 볼 때 여성이라고 생각되는데, 이것은 내가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그것은 여성이란 점에 대한 나의 편견일수도 있겠지만, 상수가 소매치기를 한다거나
건달과 깡패라는 묘사에 있어 뭔가 어색한 점이 느껴졌으며,
어린 여자와의 섹스 후에 오는 허전한 감정을 표현한 점 역시 제대로 서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선 이 작품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중점 의도는 '요즈음 인간들의 무분별한 성관계 사이에
어쩌면 자신의 친인척도 있을 수 있다'고 함으로써 무분별한 성관계를 갖지 말자는 것이다.
물론 희귀한 경우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작품의 주제는 무분별한 성관계(친인척이 끼어 있을지도 모르니)를 자제하자는 내용만이 아니라
근친을 범한 주인공이 겪는 고통을 통해 복잡한 애정관을 갖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던지고자 함일 것이다.
또한 작가는 근친간의 성관계를 부정적 시각으로 보고 그러한 잘못된 경우의 대안으로써 자살을 끌어내고 있다.
(물론 실화에 바탕을 둔 것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곤 하지만)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근친간 성관계의 찬반을 따지자는 얘기는 아니므로 접어 두기로 한다.
문제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작품 내에 잘 형상화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작품의 성급한 진행 때문에 상수가 고민하는 부분이나 점점 불안한 예감이 적중해 가는 부분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했는 바,
어쩌면 이 작품의 주제를 뚜렷이 하고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작가의 자평(自評)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고
'비극적 사랑의 종말', 또는 '가족이라는 개념'등의 엉뚱한 정의를 내렸을지도 모른다.
작품의 구조는 ' 동생 상미를 잃어 버리다.
현자와의 만남 현자의 부모님을 찾으러 다니다. 죽음을 맞이하다.'로 크게 4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길이가 짧은 단편인 만큼 그 구조 역시 단순명료하다.
그러나 작가는 여기서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만다.
현재의 상수를 묘사하는 부분이 지나면 다음 문단부터는 상수와 현자의 만남을 다루기 위한 문단이 시작된다.
섹스 후에 엄습해 오는 허전함을 느끼면서 동생을 회상하고,
다시 현자와의 만남을 회상하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온 상수...,
현자와의 만남을 서술하는 와중에 난데없이 동생을 잃어버린 옛일을 회상하고 있는 점은
아무래도 매끄럽지 못한 문맥구성으로 보여진다.
어린 여자아이와의 섹스 후에 오는 허전함 때문에 동생과 고향,
그리고 가족을 생각하는 부분은 차라리 다른 곳으로 옮겨 버린다든지,
사건의 연관성을 더해서 부드럽게 이어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회상부분 안에 과거의 회상이 있다면 더욱 매끄럽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사건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또한 현자와 동생의 일치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현자와 동생의 회상이
동시에 같은 구도로 진행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작은 실수라고 할 수 있는 지엽적인 몇 가지를 지적하면,
'현자의 과거를 알기 위해 종로로 가는 부분' 역시 약간의 매듭이 느껴진다.
'상수는 다음 날 부터 서울 시내를 쥐잡듯이 뒤지고 다니기 시작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데,
상수가 그 다음 날부터 다닌 곳은 서울시내 전체가 아니라 종로와 미아리뿐이었다.
그리고 미아리를 가기 전에는 현자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시간의 단절이 있었다.
독자로 하여금 서울을 방황하면서 현자에 대해 하나둘씩 알게하거나, 현자의 과거에 대해 집착하며
서울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상수의 모습을 연상케하는 문장 뒤의 단순한 사건처리가 아쉽다.
또 행복의 집에 가서 사내와 대화하는 부분은 대사로만 한 페이지를 가득 메우고 있다.
작품의 내용상 이 부분에서 작가가 무인칭 시점을 시도하려고 한 것 같지는 않다.
대사로만 진행이 되기 때문에 사건의 긴박성은 살아났지만, 상수의 심리적 불안감은 잘 표현되지 않았으며,
자살을 결심한 상수의 심리를 편지 한 장으로 표현한 것 역시 좋은 착안이었지만,
작가가 대안으로 제시한 자살이라는 방법의 선택원인과 상수의 심리적 갈등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작품을 읽는 와중에 현자와 상미가 동일인이라는 느낌을 처음부터 계속 받게 되는데,
이것도 비밀스럽게 현자와 상미의 동일화를 꾀했더라면 독자를 더욱 긴장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실화를 바탕으로 쓰는 소설은 실화와 같아서는 안된다.
실화를 있는 그대로 쓴다면 그것은 어떤 기사나 보고서에 불과할 것이며,
굳이 실화를 소설로 쓰는 이유는 글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또 다른 어떤 작위를 구하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혹평을 했지만 '김선미'의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이란 이 작품은 우연한 사건을 소재로 하여
진지한 자세로 써 나간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는 바, 나름대로 괜찮은 작품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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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도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태풍이 온다더만 후딱~~~비 몇줄기 뿌리고 끝나 버렸다.
무더운 여름철 님들이여 !
건강하고..., 행복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