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 짓는 마을'을 읽고
지난 '80년대에 윤흥길씨의 '장마'라는 중편소설이 출간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소설에서 문체와 시점의 힘을 발견했었다.
아이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데올로기의 시대였던 1945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눈은 정치적으로 탈색되어 있었고,
그것이 오히려 투명에 가깝게 돋보기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1인칭은 놀라운 설득력을 담보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깨달았다.
마치 사형수나 환자의 수기를 읽는 독자들이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감동이란 그렇게 다가왔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행간의 숨은 의미들과 문체의 애매모호함이
역설적으로 리얼리티를 강화 시켜준 '장마'의 문체는
사람들의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그것은 아무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이야기할 수 없었던 시대상황에서 비롯되었기에
'장마'는 자연 그대로의 장마가 가진 이미지로 기억되었다.
그 후 한동안 폭풍이냐, 폭염이냐는 식의 문학판도가 계속되었다.
안재성, 이인휘 등의 작가들이 등장했고,
이문열에게서 비린내가 풍기기 시작할 무렵이라고나 할까.
작가에 대한 비평가들의 지배(?)가 절정에 이를 때쯤,
사람들은 열정보다는 염증을 느꼈다.
이럴 때 정말 장마같은 시원함을 가져다준 작가가 출현했다.
그가 바로 김한수이다.
김한수가 문예 계간지에 '성장'을 발표하면서 첫선을 보였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려고 애썼다.
문체와 구성, 그리고 마치 '전태일 평전'을 연상케하는 주인공의 역정이
'리얼하다'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실감나게 해 주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김한수의 작품인 '성장'에다가
'성장소설'이라는 덧말을 붙여주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김한수를 정확하게 겪은 것은
'그 무더웠던 여름날의 꿈'을 내놓고 나서였다.
'성장'이 소나기라면 '그 무더웠던 여름날의 꿈'은 장마였다.
늘어지는 듯한 문체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거야 !'라는
푸념이 나오기에 충분한 시시콜콜함을 지나고 나면
비로소 마음이 따뜻해지고 넉넉한 여유를 가지고 삶을 반주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그 무더웠던 여름날의 꿈'은 그 "시시콜콜함"이 무기였고, "리얼리티"였다.
만약 당신이 화가라 치자.
셋방살이의 고단함을 인물없이 표현하고자 한다면 당신의 그림은 어떠해야 하는가.
방안에는 버너가 있고,
그 옆으로 불어터진 라면이 담긴 코펠이 반쯤 기울어져 있으며,
라면 국물에 젖은 신문지에는 나무 젓가락이,
옷이 널려져있는 방 한구석에는 개지않은 이부자리가 그대로 있고,
뒹구는 자명종 시계가 바삐 나간 방 주인의 이력을 조금은 짐작케 해준다.
그 방 주인은 피곤에 겨워 늦잠을 잤을지도 모르는 한 여공(女工)일지도,
신문배달부일지도, 우유배달 아주머니일지도 모른다.
가구하나 없는 방안이지만 한 쪽 귀퉁이에
사과 궤짝을 옆으로 세워놓은 책꽂이에
금전출납부와 책 몇 권이 가지런히 꽃혀 있다.
만약 당신이 화가라면
당연히 그 궤짝의 질감과 불어터진 라면의 양감과
이부자리의 그림자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피곤에 겨워하는 인물의 얼굴'보다는
더 설득력있게 그의 피곤을 설명하려 할 것이다.
'그 무더웠던 여름날의 꿈'은 꼭 그랬다.
비록 3인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시콜콜함을 지나면
곧바로 주인공들을 알게 되었다.
'성장'은 '성장소설'로 분류된다고 이미 말한 바 있다.
또한 '그 무더웠던 여름날의 꿈'은 시시콜콜하다고도 지적했다.
그렇다면 '저녁밥 짓는 마을'은 무어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 '성장'을 조금 길게 늘인 것이
'저녁밥 짓는 마을'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장편임에도 중편같은 단선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김한수는 '저녁밥 짓는 마을'에 '성장'에서와는 다른 설정을 해 놓기는 했다.
술집여자를 어머니로 세운 것도 그렇고,
아버지, 큰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야학에서 만난 애인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점도 그렇다.
그렇지만 그것은 중편이 장편으로 바뀐다면
당연히 따라오는 군더더기 이상의 것은 아니다.
서술태도에 있어서는 '그 무더웠던 여름날의 꿈'을 그대로 본받고 있다.
"주변인물들이 지나가면서 한 자락 얘기를 늘어놓고 떠나간다.
모두들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얘기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렇다고 공자, 맹자의 훈계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얘기는 얘기로 끝난다.
이런 점에 있어서 같다.
그렇다면 '성장'과 '그 무더웠던 여름날의 꿈'을 더하면
'저녁밥 짓는 마을'이 되는가 ?
그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절대값을 매겨보면 어떨까 ?
1일까, 2일까, 아니면 3일까 ?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3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1이나 2, 아니면
"1점 몇인 것 같다"는 느낌이 자꾸만 드는 것은 왜일까.
'그 무더웠던 여름날의 꿈'에서 쓸데없는 소리는 없었다.
군더더기 같이 보였어도 모두다 작가의 치밀한 의도가 내재되어 있는,
보여주기(Showing)의 극한이라고나 할까.
'군더더기는 무슨 역할을 할까 ?'
조정래씨의'태백산맥'은 열 권 중에 일곱 권이 '군더더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군더더기는 당대 민중의 모습을 제대로 형상화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전적(辭典的) 의미의 진정한(?) '군더더기'는 아닌 것이다.
과연 '군더더기는 무슨 역할을 할까 ?'
아마도 그것은 작품의 통일성을 깨고 난잡해짐으로써,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일 게다.
너무 단순하다고 ? 고작 그런 결론이냐고 ?
그렇다.
비록 '고작'이란 말로 비하(?) 시켰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군더더기'가 하는 역할을 표현하기란 이 말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저녁밥 짓는 마을'에서 '군더더기'는 '고작' 무슨 역할을 할까.
첫 장(章)에서 계속해서 강조되는 '어머니 때문에 비롯되는 비극'이 무엇일까.
아버지의 죽음 ? 아니면 가난 ? 학업의 중단 ?
그것도 아니라면 주인공의 삶 그 자체 ?
그 '비극'이 소설적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그 호기심은 첫 장(章)을 마감하고도 두 번째 장(章) 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뚜렷하게 비극이 무엇인지는 제시되지 않는다.
일종의 사기(詐欺)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왜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아버지는 '사상계'란 당시 지식인들만의 책을 왜 읽는 것인가.
또한 그것과 주인공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건가.
아버지, 어머니의 결혼은 어떻게 이루어 졌으며,
아버지는 왜 그리도 아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지를
속 시원히 밝히지 않는 점이 작품의 '리얼리티'를 가로막는 것이다.
사실 이 점은 이 소설의 전반부를 받쳐주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것이 알고 싶어서 독자들이 이 책을 놓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작품의 결론부분에 가서도 속시원하게 밝혀지지도 않는다.
뒤로 가 보자.
"비가 내린다. 주인공의 집은 물에 잠기고, 애인의 집에서는 아버지가 죽는다.
강하게 마음먹은 애인의 모친은 둘을 헤어지게끔 한다."
어설프지 않는가.
천재지변이야 기본적으로 우연적인 속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집이 물에까지 잠기고,
아버지가 왜 하필 죽어야 하는지,
또 두 사람은 왜 헤어지게 전개되어야만 하는지
그 이유에 있어 설득력이 없다.
전반부에서는 그런대로 고수하고 있었던 점-사회와 주인공과의 긴장된 상호침투,
그것은 '성장'에서도 유지하고 있었던 초점이기도 하다-을
후반부에서는 완전히 골격에서 제외시켰다.
'저녁밥 짓는 마을'이 '성장소설'이라 불리어 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김한수는 여전히 내가 기대하고 있는 작가의 리스트(List)에 올라있다.
그것은 사람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가 남달리 진지하다는 점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그려내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고, 읽는 독자에 대해서도 그렇다.
사실 '저녁밥 짓는 마을'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그다지 부각되지 않는 이유는
그 주인공이 불특정 다수로 간주되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 때문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읽는 이들이 주인공을 자신으로 착각 또는 혼동함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객관적으로 반추해 주었으면 해서일 것이다.
작가 김한수는 아직 젊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듯 싶다.
도시를 배경으로한 소설에서 그처럼 우리말에 대한 애정과 어휘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 보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난 그가 그런 관심을 '무엇을 얘기할 것인가'하는 점과
'어떻게 얘기할 것인가'하는 점에도 보여 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그의 젊음을 비로소 젊게 만들어 주는 비결이 될거라 믿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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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미식가들은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곳으로 가서 그 음식을 맛보려 노력한다.
낚시꾼들은 유명한 낚시터를 찾게되고...,
수석 수집가들은 좋은 수석을 찾아 전국을 다니며...,
난초 향이 그리운 사람은 난을 찾아 산야를 헤메고,
우표수집가들은 새로운 우표를 수집하고자 사전에 일정액을 우체국에 예치해 두기도 한다.
그렇다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가...?
좋은 책을 찾고자 고서점을 헤메임은 보통이요,
신간서적이 나오면 유명책방을 들려 그 책들을 놓치지 않고 본다.
뿐만 아니라 언제..., 어느 때고.., 또 어떤 책이든 열심히 읽는다.
이수태 님은 ≪어른 되기의 어려움≫이라는 글 중에서
"책을 가지는 것은 돈이 아니라 책에 대한 열정, 다시 말해서 책 속의 길에 대한 갈구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때로 좋은 책은 돈으로 살 것이 아니라
그 옛날처럼 수백리 수천 리를 찾아가서 경건한 마음으로 필사하는 그 정성으로 구하게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또 이렇게 오래 전에 나온 좋은 소설 책하나를 소개해 본다.
이문열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작가~~~!
내가 많이도 기대하는 작가~~!
그 작가..., 김한수를 소개한다.
가정의 달 5월이 오늘..., "스승의 날"을 계기로 중순을 넘어선다.
이 5월이 지나면 또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그 뒤를 잇는다.
가슴쓰린 6월이 오기 전에 우리 님들이여~~~!
좋은 책 한 권으로 알찬 가정 가꾸시기를~~~!^^*~
우리의 사랑스런 님들이여~~!
책 속에 길이 있습니다.
가장 값진 선물이 책입니다.
책을 가지는 것, 책을 읽게 하는 것,
책을 물려주는 것이 최고의 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