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텃밭에서 / 청송 권규학
여름, 텃밭을 가꾼다
텃밭이라 하기엔 턱 없이 크지만
힘들다는 느낌보다는 늘 상큼한 기분이다
상추와 열무 씨를 뿌리고
오이와 고추, 호박과 가지 모종을 심는다
일일 여삼추(日日 如三秋)로 기다린 시간
싹이 돋고 하루가 다르게 잎새가 큰다
도라지, 부추도 땅을 밀어 올린다
비 소식이 있는 날엔
고구마 순을 사서 땅 속 깊이 꽂는다
쑥쑥 쑤욱 쑥-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들의 성장통을 느낀다
토란의 덩이뿌리는 언제쯤 싹을 낼까?
한 달 넘게 기다려도 소식이 없는…
어떤 놈은 빠르게
어떤 녀석은 느리게
저마다 특성 있게 자라는 녀석들
빨리 크는 녀석은 일찍 볼 수 있어서 좋고
늦게 크는 녀석은 늦으막이 볼 수 있어 더 좋다
모두가 마음에 쏙 드는 여름 친구들
그래서 좋다, 세상의 모든 것이 좋다
오랜만에 전원(田園)에 들렀다
늘 귀엽게 반겨주던 친구들, 그들이 없다
싹이 돋던 고구마순은 바짝 말라버렸고
고추 순은 꼭대기부터 오그라 들었다
그 왕성하던 호박 덩굴은 기(氣)를 잃었고
귀엽던 상추 싹은 줄기째 몽땅 사라졌다
고라니 선생님의 맛있는 야식으로…
텃밭 한쪽에선 잡초들의 도전이 거세다
쉴 틈 없이 돋아나는 잡풀들의 아우성
서서히 잡초들의 반항이 시작된다
온몸이 땀범벅이 되고 피부는 까맣게 탄다
그래도 좋다, 전원(田園)의 모든 게 좋다
믿으니까 믿는 것처럼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것처럼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17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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