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수채화-내 나이 육십이면- / 청송 권규학
지천명(知天命), 쉰 고개 넘어선 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순(耳順), 어느새 육십, 갑자가 코앞으로 다가섰다.
매사 자신만만, 패기있게 살아왔건만
언제부턴가 몸도 마음도 삐걱 거리는 게 옛날 같지 않다.
허리 아프고, 치아는 흔들리고, 어깨와 목덜미엔 뻐근함이 가득하고
심심할 때마다 가슴에 찌르르- 통증성 울림이 온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소갈머리는 빠져나가 반질반질하고
귀밑머리엔 희끗희끗 온통 흰머리가 득세한다.
몇 년 전의 그 팽팽하던 젊은이는 어디로 사라지고,
노인도 아니요, 젊은이도 아닌, 중늙은이 하나가 마주 쳐다본다.
승용차 운전도 귀찮아져서 버스나 전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젊은 친구들이 자리를 양보해 줘도 기분이 좋지않고
양보하는 사람이 없어도 왠지 섭섭한 마음이 든다.
텅 빈 경로석에 앉아가려니 내키질 않고 서서 가려니 그 또한 찜찜하다.
배드민턴을, 골프를, 탁구를. 족구를…
격한 운동을 하자는 후배들의 권유에 선뜻 응하려니 자신이 없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지려니 치솟을 대로 치솟은 자존심이 반발한다.
산에 가자고 유혹을 하면,
그 정도야 잘할 수 있을 듯한 마음에 자신만만 따라가지만,
몸 따로 마음 따로, 몸과 마음이 앞다투어 제 갈 길로 이끈다.
인생 140을 산다고 누가 말했는가.
'앞으로 10년을 살지, 20년을 살지…. 운이 좋으면 30년은 살겠지', 하며
자신의 수명을 제 맘대로 결정지으며 노후설계에 마음만 바쁘다.
정년이 가까워지니 오히려 할 일도 많고, 해야 할 일은 더욱 많다.
'퇴직하면 어디로 갈까.'
가족의 품에 안겨야 하나, 아니면, 전원의 꿈을 실현해야 할까.
'죽으면 또 어디에 묻힐까.'
고향 문중산 둔덕에 봉분 하나 더 생길까.
아니면 그저 한 줌 흙으로 강물 위에 뿌려질까.
그것도 아니라면, 국립묘지의 어느 귀퉁이에 한조각 묘비를 남길까.
정말 나이 든 탓일까.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앞날 걱정까지 미리 당겨서 하고
괜히 머리 위에 내리는 비를 피할 생각은 않고
앞에 내리는 비를 걱정하며 바삐 달려나가 내리는 비에 젖는다.
인생사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했거늘, 걱정할 게 무엇이랴만
몸이야 흙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품은 뜻, 못다 이룬 꿈은 또 어떻게 될까.
아직은 못다 한 일들이 너무도 많은데, 하고 싶은 일들은 더 많은데…
모든 게 부질없는 줄을 알면서도 끈을 놓지 못한 채 공염불만 남발한다.
숲을 공부해서 '숲 해설가'가 되고, 한자 지도사에, 심리상담사에
행정사에, 빌딩관리사, 경비지도사, 위험물취급 등…
젊을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분야까지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간을 본다.
꼭 이렇게 안달복달하고 불안감에 빠져야만 할까.
어느새 육십 고개에 이르렀거늘 무엇 때문에 이토록 초조해 할까나.
잊자, 잊어버리자.
아니, 잊기보다는 털자, 훌훌 털어버리자.
마음 안에 들어찬 욕심과 욕망과 탐욕의 싹들, 모조리 털어내고 가볍게 날자.
돈이란 많을수록 좋겠지만, 남에게 손 벌리지 않을 만큼이면 충분하고
사람이야 지금껏 맺은 숱한 인연보다 더 좋은 인연을 만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보다는 함께한 인연을 관리하기도 벅찬 나이,
육십 평생 함께한 지인(知人)이면 충분할 터
그저 풍광 좋은 시골, 산기슭 양지 녘에 집 한 채 지어
봄이면 텃밭 갈아 씨앗을 뿌리고, 닭이랑 토끼랑 가축도 키우며
상선약수(上善若水)*에 요산요수(樂山樂水)*를 구가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글을 쓰며 유유자적, 그렇게 살자.
사랑아, 내 사랑아!
우리 그렇게 하자.
짧으면 10년이요, 조금 더 살면 20년…
길게 산다고 해도 30년이거늘…. 뭘 그리 고민할 거나.
인생사, 일소일소일노일노(一笑一少一怒一老)*라 했거늘
찡그리기보다는 웃는 얼굴로 그렇게 이순(耳順)을 보내자꾸나.
다시 또 다가서는 고희(古稀)의 10년을 기대하면서. (150111)
* 상선약수(上善若水)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뜻으로 도덕경 왕필본 8장에 나온 말로써
'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여기는 노자(老子) 사상의 주장
* 요산요수(樂山樂水)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공자의 말씀으로
'산수의 경치를 즐김'을 의미
* 일소일소일노일노(一笑一少一怒一老)*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성내면 한 번 늙어진다'는 뜻으로
'화내지 말고 웃으며 살자'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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