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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자작글

삶, 그 낯선 길(路)에는(2)

 

 

삶, 그 낯선 길(路)에는(2) / 청송 권규학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일까.

아니, 어디라기보다는 내가 가야 할 길을 어떻게 가야만 할까.

요즘 들어 왠지 이런 생각이 빈번히 뇌리를 채운다.

어차피 사람 살아가는 길은 한 방향일진대,

무엇을 위하고, 또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의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복잡한 삶을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은 숱하게 많을 텐데, 아직껏 그 방법 하나도 터득하지 못했다니…

누가 있어 이런 마음속의 갈등을 제대로 풀어헤칠 사람이 있을까.

어차피 삶의 모양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할 것이기에

오늘도 여린 햇볕이 창가를 노크하는 이 아침에 마음속 응어리를 토로한다.

 

'헬렌 니어링'은 그의 저서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고…

다른 방, 다른 곳에서 다른 사건이 일어난다.

우리 삶에는 열리고 닫히는 많은 문이 있다.

당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당신 자신이다.』

 

그렇다.

'자신의 삶을 살찌게 할 것인가, 있는 그대로의 삶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일 뿐이다.

 

언제부터였던가, 평소엔 별로 좋아하지 않던 산행을 자주 한다.

왠지…. 산에 다녀오면 울적하고 답답한 그 뭔가 얽혀있는 듯한 응어리가

어느 정도 풀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어제도 해거름, 여가 시간을 활용하여 인접한 산 능선을 올랐다.

어둠이 내리는 저물녘의 골짜기, 왠지 노을 진 햇볕에서 인생의 황혼을 보는 듯하다.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이 풀어지듯,

산모퉁이를 따라 일렁이는 노을빛은 왜 그리도 너울너울 일렁이는지…

아름답다고 할까, 아니면 황홀하다 해야 할까.

눈에 비치는 빛이 너무도 강렬하여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다.

 

언젠가…. 열심히 전도하던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 생각난다.

‘하나님이 있다는 걸 어찌 확신하십니까?' 하고 면박성 질문을 하였더니

그분은 화를 내기는커녕,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지금 하늘의 태양을 쳐다보십시오. 똑바로 볼 수 있으신지요?'하고…

하긴, 태양조차도 눈을 뜨고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일진대,

어찌 그 태양을 포함한 천지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을 똑바로 볼 수 있으리.

 

어제의 산행은 의도적으로 평소에 가보지 않은 길을 택했다.

마치 토끼가 같은 길로만 다니는 습성이 있는 것처럼,

걷는 걸음도 늘 가던 길로 가고, 운전도 늘 같은 길로만 갔던 나…

언제나 정형화의 틀 속에 갇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온 나였지만.

오늘은 늘 한 가지 스타일을 고집하던 걸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줄…

아니면, 새로운 기준을 느끼게 해 줄 뭔가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뭔가 반항하고픈 마음이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도 남아 있어서일까.

아니면, 스스로 되새겨 볼 마음으로부터의 자성(自省) 같은 것, 그런 게 필요해서일까.

어제는 오름길과 내림길을 다르게 잡았는데, 그 길은 너무 가파른 길이라서

발목이 조금 시리고, 나무가 없어서인지 햇살이 아무 여과 없이 비추어서

여유로움이라던가 아기자기함이 없었던 산행이었다.

스스로 스타일을 바꿔보고자 했건만 왠지 그 길은 내가 좋아하는 길이 아닌 것 같았다.

 

오늘은 올라가는 길을 바꿔보기로 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설렘이라던가…, 이 길이 나를 받아 줄 것인가…,

아니면, 내가 이 길을 사랑할 것인가…, 라는 생각은 산을 오르며 가지는 사치스러움이라서 좋다.

통나무를 박아놓은 옆길을 따라 오르니 중간에 평지가 나오고 넓은 공터가 여유롭다.

소나무 등걸에 잠깐 등을 붙이고 하늘을 바라본다.

불량기 가득한 소년의 걸음걸이 같은 산들바람이 건닷 불어와 나무를 건드린다.

 

바람을 받아들이는 나무의 자세는 언제나 한결같다.

늘 침묵으로 일관하는 나무…, 나무의 속잎에 흘러내리는 햇빛…, 나무는 정녕 금덩어리인가.

바람이 부는 대로, 바람이 이끄는 대로 흔들리는 저 여유로움…

어쩌면 저렇게 자유롭고 갈등 없이 평화로운 움직임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바람이 불어오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바람은 같이 지내고 싶은 것이다.

들꽃들과 같이 놀고 싶고…, 나무와 같이 놀고 싶고…, 풀들과 함께 속삭이고 싶어서…

그리고 숲의 모든 것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저리도 소리 없이 다가오는 것이다.

바람은 말한다. 나의 귓전에 대고 속삭인다.

‘이제 너도 이렇게 다가가 어울려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모든 걸 다독이고 어루만지며

‘모든 것에 공평한 너의 마음을 줘보라’고 바람이 내게 한 수 가르침을 준다.

 

산으로 올라가는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아직은 가보지 못한 길이 있으니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햇살이 좋은 양지바른 언덕길 같은 그 길로 가야 하나…

나무가 우거져 가끔 햇살이 비치는 나무의 터널 같은 그 길로 가야 하나…

개울물이 졸졸 흘러가는 운치 있는 그 길로 가야 하나…

신작로 길이 잘 닦여있는 널찍한 등산로로 가야 하나…

바다가 보이는 그 전망 좋은 언덕길을 따라가야 하는 건가…

아니면, 이 모든 길을 다 사랑해서 내 마음에 햇살이 가득한 날은

그늘이 지는 나무의 터널 길을 갈지도 모르겠고…

마음이 우울한 날은 햇살이 좋은 양지 빛깔 고운 그 길을 갈지도…

뜻 모를 외로움이 밀려오는 날이면

바다가 보이는 그 외딴 언덕길을 걸어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길일지라도 걸어야 할 길이라면 절대 마다치 않으리라.

어쩜 산을 오르는 그 길은 내가 살아가는 인생과 닮은꼴이다.

 

어느 길을 갈 것인가…,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어떤 길로 가도 그 길은 산의 정상에서 만날 것이고…

그리고 또 내 삶의 종착역도 만나게 되겠지.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산을 오르는 여러 갈래의 길은 천천히 올라가 보고

그 길이 주는 느낌으로 ‘좋다, 안 좋다, 마음에 든다, 안 든다’를 결정할 수 있지만…

그래서 다음에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지만…

단 한 번뿐인 내 삶의 길은 돌아올 수 없다는 것…

돌아볼 순 있다 하더라도 처음으로 돌아가 새로이 시작할 수는 없다는 것…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어떻게 갈 것인가…

언제나 어디서나 선택으로 이어지는 삶…

너무 신중히 생각해도 안 될 것이고, 너무 쉽게 생각해서도 안 되겠지.

그저 마음이 허락하는 대로 후회 없는 삶이 되도록 그 길을 택해서 걸어가야겠다.

 

오늘따라 유난히 에메랄드 빛 하늘이 낮다.

내 두 발을 떠받친 이 산 정상이 너무 높아서일까.

아니다. 태산이 아무리 높다 한들 하늘 아래 뫼라고 하지 않던가.

저렇게 파란 청잣빛 물감이 떨어져 내릴 것만 같은 이 맑고 청아한 계절에

하늘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쌓인 마음속 스트레스를 떨구어 보자.

 

어느새 아메바의 거품처럼 스멀스멀 기어오르던 땅거미가 세상을 삼킨다.

도심의 중심으로부터 귀퉁이를 따라 하나, 둘씩 등불이 켜지고

도시는 금방 현란한 광대의 춤사위를 연출한다.

낮을 밤처럼, 밤을 낮처럼 살아가는 저 수많은 인간 광대들의 흐느적거리는 물결 속으로

오늘도 이 한 몸 던져야 하나 보다.

 

길(路)은 멀고 험하다

 

평탄한 신작로였다가도

가끔은

질퍽질퍽한 궂은 길로 변했다가

또 어떤 때는

울퉁불퉁, 굴곡진 험로(險路)로 다가선다

 

그럴 때마다

길은 길이 아니었다

길을 걷는 것도 내가 아니었다

내가 길의 등(背)에 업힌 채

한 발짝 두 발짝

힘든 여행을 지속하는 노예일 뿐이었다

 

길(路)은 가깝고도 멀었다

 

등짐으로 짊어진 그 길은

눈앞에 펼쳐진 내가 걷는 그 길은

어느 날 갑자기

아른아른, 보일 듯 말 듯 희미해져갔다

 

이제는 끝이다, 종착역이다

길이 끝나는 그 끝 지점엔

처음 보는 낯선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걸어도, 또 걸어도 끝이 없는 그길

발걸음이 멈춰 끝난, 바로 그 자리

그 길의 끝에는

하늘과 하늘이 맞닿아 있었다.

 

- 삶, 그 낯선 길(路)에는 -

 

 

빛바랜 여울목 가을빛을 보며,

오늘도 혼자만의 넋두리에 취해 발아래 펼쳐진 도심 한가운데로 헛발질한다.

이 넋두리가 끝나면 또 다른 삶의 산행길이 보이기나 할까.

돌아오지 않을 넋두리의 끝말을 잡고 앉아 청잣빛 창공을 훨훨 떠돌고 싶다.

 

자연을 사랑하고,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

숲을 사랑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또 다른 사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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