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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돌베개)의 ‘전태일 평전’

    조영래(돌베개)의
    
    ‘전태일 평전’을 읽고
    
    
    언젠가..., 아마 5년은 더 지났지 않았나 싶다.
    신문광고는 물론, 다양한 종류의 매스컴을 통해 요란스럽게 소개되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란 
    영화광고를 접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홍경인이란 배우가 열연했던 영화였지 싶다.
    하지만 그 영화광고를 접할 당시만 해도 전태일이 어떤 사람이고, 또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몰랐던 게 사실이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어떤 역사적 사건을 다룬 괜찮은 영화’이려니 생각만 하였을 뿐, 
    사실 책을 읽지도..., 또는 그 영화를 본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런저런 책읽기에 열중하다보니 이제서야 이 책..., ‘전태일 평전’을 접하게 되었다. 
    지천명을 직전에 둔 내가 이 책을 읽고, 또 읽은 소감을 쓰고 있는 이유는 이 책의 매력..., 
    즉 이 책이 ‘전태일’이라는 주인공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인 ‘조영래’ 변호사까지 겹쳐 두 사람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영래’ 변호사는 ‘법을 배운 전태일’이라 일컬어질 만큼 그의 삶에 ‘전태일’의 냄새가 짙게 묻어난다. 
    이 책은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의 시대상황과 변화과정을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아주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요즈음 노동자들의 투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 이 책에 나오는 ‘전태일’이라는 인물에 대해 
    민주주의 사회적 관점과 자본주의 사회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전태일’은 단지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평범한 일꾼이었다. 
    그가 죽기까지 모든 갈등의 발단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개선되지 않는 사회구조’와 지극히 평범하지만 
    불의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한 청년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다. 
    여기에서는 ‘전태일 평전’을 통해 위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얘기하고자 한다. 
    어느 사회나 그 나름대로 약간의 갈등과 문제점은 다 안고 있으며, 그 갈등의 타래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인격체들이 조화로운 삶을 꾸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나 영국, 미국이 시민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이 그러했고,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제국주의가 성숙한 시민사회로 발전해나가는 과정 또한 그러했다. 
    ‘전태일’은 과거 우리나라가 군부독재로 인해 부당한 대우에 항거할 권리를 잃고 살았던 
    대다수의 성실한 노동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바쳐서라도 개선되지 않는 사회구조에 일침을 가하고자 했던 
    시민사회의 대변자이다. 
    사회의 성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몸부림에서 잉태된다. 
    ‘전태일’은 우리 사회의 성숙의 척도를 한 단계 끌어올린 셈이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 날 기분이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라는 고백에서 
    비단 그의 불우한 어린시절뿐만 아니라 빈부의 문제의식이 엿보인다. 
    그의 문제제기는 평화시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1970년 초 작품초고에 썼던 다음의 문구를 통해 더욱 확실해진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貧)한 자는 부(富)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이것이 사회의 현실입니까?    빈부의 법칙입니까?’ 
    먼저 앞의 인용문장에서 그는 왜 기분이 우울했을까 ? 
    단적인 예로 우리는 당시와 비교해볼 때 보다 많은 인간의 권리를 누리며 살지만, 
    지금 당장 역광장이나 지하철 지하도에 앉아 돈을 구걸하는 걸인들을 보며 
    우울한 기분으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    
    더럽다거나 불쌍하다거나 라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그가 사회의 제도권 안에서 정상적인 삶을 누리며 살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혹은 그 걸인이 장애를 안고 있다면, 
    장애인의 사회화에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를 생각해보던지 자신에게 반문해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조영래’ 변호사가 이름 지었던 ‘전태일 사상’의 단초가 되는 것이다. 
    ‘전태일 사상’은 문제의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본격적으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한다.      
    당시 열악한 노동 상황에 대해 기자들, 방송국 PD들, 지방노동청 공무원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거대한 권력과 구조 앞에 문제점들을 보도하고 시정할 용기조차 없었던 것이다.     
    자기안위와 사회적 기득권적 지위 등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전태일’이 분신을 시도하고 나서야 그 사건을 빌미로 대대적인 보도와 문제점 비판에 나선 것이다.      
    요약하면 ‘전태일’이 잘못된 사회구조에 순응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였으며, 
    그것을 실천하였다는 것은 우리나라 시민사회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자본주의의 장단점을 논외로 하더라도, 어차피 자본주의를 폐기하지 못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의 성립, 유지를 위해서 노동자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     
    우리 사회를 잘 들여다보면 결국 힘들고 고되고 
    소위 더러운 일들을 맡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들이다. 
    그들이 없는 세상을 한번 상상해볼까 ? 
    결국 사회라는 수레를 굴리는 쳇바퀴는 하나, 둘씩 빠지고 사회는 몰락할 게 뻔하다.
    사회는 그들의 역할을 인정하고 그들의 지위를 보장해주어야 하며 그들의 노고에 감사해야한다.     
    선진자본국인 독일이나 프랑스, 서유럽국가들은 순수한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노동자를 대우하지 않는다. 
    시민사회의 성숙과 함께 인간의 평등, 자유, 인권이 중요시된 만큼 
    그들을 생산현장의 부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의식의 전환과 필요한 공산주의의 일면인 복지나 사회적 부의 재분배 등을 도입하여
     노동자와 자본가의 조화로운 삶을 꾀하여 사회를 운영해나가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 역시 노동자에 대한 잘못된 의식과 피폐한 천민자본주의로 실상 사회에 꼭 필요한 
    노동자들을 박대하였던 것이다. 
    ‘전태일’은 당시 박정희 정권 하에 추진된 거대 자본가를 위한 일방적 부의 축적 시스템의 희생양이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사회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성숙을 향해 도약한다. 
    그것은 사회라는 공동체이면 어디든지 통용되는 진리이며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자본사회 역시 
    그 원리에서 예외일 수 없다. 따라서 많은 문제제기와 실천을 통해 
    대안과 대책들을 제시해나가며 자본사회는 발전해나간다. 
    당시 노동자 ‘전태일’은 한국자본주의 구조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이를 세상에 알리려는 
    갖가지 시도 등으로 노력을 기울이다 끝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는 현재 우리나라의 노사정위원회나 
    노동조합의 존립보장, 노동법, 근로기준법 등의 적용의 결실을 맺었다. 
    앞으로도 ‘전태일 사상’과 정신에 기초하여 더욱 합리적이고 안정적이며 
    조화로운 자본주의 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노력해야할 것이다. 
    나는 ‘전태일’을 통해 한 가난하고 불우한 노동자의 삶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그가 남기고 간 업적에 감탄하며 사회를 움직여가는 구성원으로서의 참모습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민주주의적 관점에서나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나 성숙한 사회의 발전을 이루어가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거룩한 시민이자 노동자이다. 
    요즘 노동자들의 분신사건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무언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들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나는 어떠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어떤 방식으로 동참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전태일’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        
    왠지 그것이 궁금해진다.
    어찌되었든 이 책은 최근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실상과 맞물리어 묘한 뉘앙스로 내게 다가섰다.
    노조간부들의 잇따른 죽음과 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노동자들..., 
    그리고 거기에 맞서 공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정부..., 도대체 앞이 보이지 않는 이러한 대치국면에서 
    뭔가 속을 시원하게 뚫어줄 산뜻한 해결책이 제시되기를 바라며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