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열전'을 읽고
역사적으로 볼 때 후세에까지 그 이름이 알려지고,
또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역사는 곧 위대한 영웅이나 위인들의 전기가 많다.
하지만 영웅이나 위인들보다는 이 세상을 살다간 사람들은
일반적인 서민이나 평민들의 수가 부지기 수로 더 많다.
그런데 왜 후세들에게 알려지는 것은 서민이나 평민들이 아닌 영웅이나 위인들일까...?
그것은 아마 누구나 뛰어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그 영웅전기나 위인전기를 통해 스스로도 영웅이나 위인이 되고픈...,
어떤 동일시적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영웅이나 위인이 아닌, 순수한 평민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책이 발간되었다.
학회에 나갈 시간도 아껴가며 매일 평균 10시간씩 20여 년 간 고전 번역에 매달린 끝에
『한국의 한시(漢詩)』 시리즈 40권을 완간한 허경진(50) 연세대 국문과 교수가 조선시대 평민 중에서
남다른 삶을 살았던 110명의 이야기를 엮어낸 『평민열전』이 바로 그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평민 한문학이 꽃핀 것은 임진왜란 이후다.
양반층의 무능력과 허세가 드러나면서 평민의 저력이 부각됐고, 여러 분야의 실무와
기예를 맡았던 평민들이 실력을 쌓으면서 더 많은 지식과 문학에 눈을 돌렸다는 것이다.
양반들의 과거공부와는 달리 자신들의 삶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던 평민들의 한문학의 한 형태가
전(傳)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사마천의 역사서 『사기(史記)』에서 시작된 전(傳)은 역사의 일부라는 점에서 주요 인물의 행적 중
가장 비상했던 사실만을 간결하게 기록했다는 특징이 있다.
조선시대 19세기 이후 평민들이 지은 사전(私傳)은 의적, 역모자 등,
지배층에 거부된 인물들도 포함하는 등 다양한 인간상을 만날 수 있다.
110명의 등장인물은 시인 화가 서예 의원 역관 처사 선비 바둑 장인 기생 궁녀 등,
직업이나 의협 충렬 효자 효녀 절부 열녀 등, 가치관에 따라 14개 군으로 분류됐고,
각 인물들의 일화 작품 등을 짤막하게 엮어 우선 읽기 편하고 교과서에서 만나지 못하는 민초들이 많다.
예컨대 화가 장승업은 술 좋아하기를 마치 목숨처럼 해서 마셨다 하면 언제나 몇 말이었는데
취해 떨어지지 않고는 끝내지 않았으며, 어떤 때는 몇 달이고 깨어나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임준원은 가난한 데다 늙은 부모가 있었으므로 내수사(內需司)의 서리가 되었다.
재산이 수천 냥 모아지자 "내겐 이만하면 넉넉하다"며
아전 일을 내어놓고 문학과 역사책을 읽으며 스스로 즐겼다.
좋은 날이나 아름다운 경치가 있을 때마다 여러 사람을 불러모아 시를 짓고 술도 마시며 즐겁게 놀았다.
그러고 보면 술이란 것은 문학을 토로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감초의 역할을 하는가 보다.
이 책 평만열전을 통해 '역사란 한 사람의 영웅이나 위인에 의해 씌여지기도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수많은 평민들이 있기에 역사의 향태를 취할 수 있다'는 새로운 진리를 깨우치게 되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서민문학에 대해 약간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읽기를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