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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 서 평

채만식의 '탁류(濁流)'

 

채만식의 '탁류(濁流)'를 읽고

 

 

이 소설은 탁류가 흐르는 금강하구의 군산이란 항구를 무대로 하여

일제 말기의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정주사 집안의 몰락을 중심으로

타락한 인생여정들의 삶을 통해 당시 시대상황을 예리하게 파헤친 수준높은 작품으로써

우리나라 풍자소설의 대명사로 통한다.

특히 도시 하층민의 삶을 사진기처럼 있는 그대로 들추어내는 것이 아니라

소리에 있어 판소리와 같은 모습으로 소리꾼 채만식(蔡萬植 : 1902~1950)의 독특한 전라도 사투리가

짙게 베인 특유의 냉소와 욕설로써 절묘하게 풀어나간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탁류'의 전반적인 흐름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정주사의 딸 초봉은 자기 집 하숙생이었던 남승재와 사랑에 빠지지만

당장의 물질적 도움을 기대하는 아버지 정주사의 강권에 의해 은행원 고태수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아 고태수가 평소 정을 통해오던 여인의 남편에게 맞아 죽게되자

기회만을 엿보던 꼽추 장형보에게 겁탈 당한 후, 자신이 근무하던 약국주인인

박제호의 첩으로 들어앉아 아비없는 딸을 출산하게 된다.

딸을 출산하자마자 초봉에게 싫증을 느낀 박제호가 꼽추 장형보에게 그녀를 넘기게 되고

초봉은 자기신세를 서러워하면서도 친정의 궁핍한 살림을 돌보기 위해 마지못해

장형보에게 몸을 내맡김으로써 기구한 운명의 길을 이어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초봉은 자기가 낳은 딸을 못살게 괴롭히는 장형보의 행동에 분개하여 엉겁결에

그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나 옛 연인 남승재와 여동생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초봉은 남승재에게 사랑하는 연인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그가 아직도 자신을 잊지 못하고 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오판, 한가닥 연민의 정을 기대하면서

자살대신 징역을 선택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마무리된다.

 

작가가 이 작품에 등장시킨 주요인물 8명의 성격을 분석해 보면,

'정주사'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3년간 군청에서 서기를 보다가 실직하자

고향을 떠나 군산에 정착, 쌀 거간꾼 노릇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데,

이는 조선인들의 역사적/사회적 몰락의 전형으로 대표된다.

 

'유씨'는 정주사의 부인으로 우리민족 아낙네의 고유모습인 자식에 대한 대단한 교육열을 보여준다.

'초봉'은 사실상 이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으로서 전형적인 조선여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비참한 인생역정을 통해 자아를 인식하는 사람으로 표현되고 있다.

 

'계봉'은 언니인 초봉과는 달리 적극적이며 새로운 인생관을 가지고는 있으나

시대상황이 가져다 주는 고난, 즉 탁류를 헤쳐 나가기엔 부족한 여성으로 묘사된다.

 

'남승재'는 의사 조수 일을 보는 소박하고 도덕적인 휴머니스트로서 한때나마 초봉을 사랑하지만

결국 헤어지게 되고, 사회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만다.

 

'고태수'는 타락한 은행원으로서 쌀 투기와 공금횡령 등,

부정적인 방법으로 재물을 모은 부패한 관리로 묘사된다.

남승재처럼 고아로 성장하여 신분상승을 꾀하지만 윤리적인 파탄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되고,

부를 미끼로 초봉과의 결혼에 성공하지만 결국 장형보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한다.

 

'박제호'는 초봉이 일하는 약국의 주인으로서 초봉을 첩으로 삼게 되는데

결국 고태수와 마찬가지로 윤리적으로 타락한 지식계급과 중산층을 대표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장형보'는 꼽추라는 신체적인 결함과 고아라는 신분을 비관하며 사회 전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악당의 역할을 대변, 정상적인 인간에 대한 적대감으로 뭉쳐진 인물로 묘사된다.

 

이 작품에서 정주사, 고태수, 박제호, 장형보는

모두 속물화되고 타락한 30년대 한국사회의 인간상을 대표한다.

이들 모두는 초봉을 이용하고 탐하고 짓밟은 후 효용가치가 없다 싶으면 여지없이 그녀를 버린다.

탁류 속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이들 작중인물들의 갈등은 대단히 비속적이고 통속적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는 식민지 시대 조선인의 고통이 여지없이 베어 있으며,

이를 채만식 특유의 풍자로 묘사/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된다.

신교육도 받았고, 아름답고 기품도 있지만 봉건적 의식에 젖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고태수, 박제호, 장형보라는 시대적/윤리적 파탄자에게 차례로 유린당하고 마는

여 주인공 초봉의 비참한 운명은 조선의 역사적 운명과도 비길 수 있다.

물론 식민지 시대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초봉을 유린한 이들 세 사람을

청국이나 러시아, 그리고 일본이라는 등식으로 연결, 도식화 시켜 볼 수도 있겠으나

이는 너무 지나친 오버액션(Over Action)으로써 현실과의 괴리감을 더욱 크게하기 때문에

감히 모험을 할 수가 없다.

다만 장담하진 못하지만 뭔가 확실히 짚을 수 있는 것은 작자 채만식의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의 소산물이 "탁류"라고 하는 소설의 제목에 형상화되어 있다는 것이 분명하기에

다행하게도 통속의 함정을 무난히 건너뛰고 있다 할 것이다.

 

채만식은 이 소설에 나오는 세 사람의 속물들을 그만의 장기인 특유의 풍자로써 꼬집었는데

결국 그가 말하고자 하는 탁류는 곧 순결한 여인 초봉을 농락하는 고태수, 박제호, 장형보 등,

세 사람의 상징물인 식민시대 당시의 우리사회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연약한 여인 초봉(조선)은 끝까지 이같은 탁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물결에 휩쓸리어 끌려 다니기만한다.

다행히 채만식은 남승재와 그의 연인 계봉에게 탁류를 헤치고 살아 갈 수 있는 강인한 힘과 애착,

그리고 끈끈한 근성이 없다는 게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서 작자 채만식이 의도하는 방식이 너무나 암시적이어서 소설의 본질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 점이 채만식 작품세계의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공존한다 할 것이다.

이렇듯 식민지 시기의 우리 사회현실을 다양한 인물묘사를 통해 풀어나간 채만식의 매력은 날카로운

사회의식은 물론이려니와 그것을 직접적인 고발이 아닌 간접적 풍자로 소화해낸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일제의 냉혹한 탄압이 존재했던 당시 식민지 문학인이 현실을 고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안 가운데 하나였다고 볼 수 있는데 가혹한 독재시기였던 70년대에

채만식이 새삼 주목받게된 것이 바로 이같은 점을 높이 평가한데서 연유되었다 할 것이다.

아무튼 이 소설을 통해 한 시대를 살다간 우리 조상들의 애환을 간접적이나마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본 것은 나로서는 큰 수확이라 할 수 있었다.

숱한 작중 인물들이 결코 한 세기를 바라보는 지난 세월 속 사람들이 아닌,

언제라도 1930년대와 같은 시대가 도래된다면 탁류의 주인공들과 똑같은 인물들이 등장할 것이며,

또한 그런 상황이 또다시 되풀이 될 것임을 예상해 볼 때, 복잡한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지는 교훈은 확실하게 잡히지는 않더라도 뭔가 자못 심각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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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이 1997년 말의 IMF시기보다 더욱 힘들고 어렵다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봐도 그렇다.

아직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밀린 카드빚으로 인해 자신의 삶의 공간을 스스로 떠나

원하지 않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이 흔하게 보인다.

대한민국의 국민된 자로서 스스로 그 국민된 권리를 포기하고 행방불명 자로 신고해야하는 안타까운 현실...!

정말이지 요즈음과 같은 시대상황도 결코 낙관할 수만은 없는...,

어렵고 험난한 시기임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꼭 이 소설의 시대상황과 같은 조선시대가 아니라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과 같은 이러한 어려운 시대상황이 바로 "탁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제적인 상황에서 바라 본 "탁류"...?

이웃한 지구 반대쪽에서는 전쟁으로 얼룩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쟁의 당사자인 우리나라에서는

"로또"라는 얼토당토 않은 환상에 젖어 출렁이고 있는 현실...!

정말이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바로 "탁류"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의 존재가 아닐까...?

어렵고 힘든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 모든 님들과 이런 어려움을 공유하고자 이 소설의 소감을 올린다.

다른 해보다는 유난히 빠르게 찾아온 듯한 여름을 대하며..., 모든 님들의 건투를 빈다.

모두 모두 건강 + 행복 + 유쾌 + 상쾌 + 통쾌한 하루하루가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