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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 서 평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양계장안에서 살았지만 희망을 잃지 않은 난용종 암탉 '잎싹'.
'잎싹'이란 아카시아 나무 잎사귀를 보고 지은 자신의 이름이다.
잎사귀가 꽃을 피우고 햇볕과 바람, 비를 맞으며 푸르게 자라 
가을이면 노랗게 변해 떨어져 거름이 되는 것을 보면서 
'잎사귀가 가장 훌륭한 것'이라 생각한 암탉은 
자기도 잎사귀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서 '잎싹'이라 이름지었다.
자신의 이름을 지은 후, 깊이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고, 마음에 늘 희망을 품는다.
그 희망이라는 건,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알을 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껍질도 없는 알을 낳았던 '잎싹'은 
더는 자신이 온전한 알을 낳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알 마저 주인이 마당에 던져 개의 먹이로 주는 것을 보고, 
더는 닭장 안에서는 알을 낳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닭장 철망 밖으로 보이는 '마당'이란 공간은 '잎싹'에겐 이상적인 세계였다.
그곳에만 가면 반드시 꿈이 이루어지리라 믿었다.
그래서 닭장을 벗어나서 아카시아 나무가 있는 마당으로 나가 알을 품어야겠다는 희망이 
오히려 폐계로 전락됨으로써 기회로 다가선다.
하지만, 그건 결국 '잎싹'이 바라던 마당(희망)이 아닌, '죽음의 구덩이'로 가는 것이었다.
'죽음의 구덩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잎싹'이 족제비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나그네'란 이름을 가진 청둥오리를 만나게 되고, 
암탉 '잎싹'과 청둥오리 '나그네'의 우정과 사랑과 모성애가 시작된다.
'잎싹'이 생각했던 마당이란 공간은 그리 이상적이지 못했다.
다른 닭과 오리, 개와의 갈등으로 함께 살 수 없어 마당을 떠나야할 입장에 처해졌지만 
'잎싹'은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잎싹'을 대변해 주던 청둥오리 '나그네' 마저도
'뽀얀 오리'와 함께 사라지자 '잎싹'은 마당을 나와 혼자서 길을 가다가
찔레나무 가시덤불 속에서 외마디 비명소리를 듣는다.
그곳에서 따뜻한 알 하나를 발견하게 되고, 
알을 품길 소원하던 '잎싹'의 꿈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사라졌던 청둥오리 '나그네'가 '잎싹'의 앞에 다시 나타난다.
'잎싹'이 알을 품는 동안 '나그네'는 물고기를 잡아오거나 옆에서 지켜주는 등
열성을 다해 '잎싹'을 보살피다가 알이 부화되기 직전에 부화될 아기와 
'잎싹'의 안전을 위해 '알이 부화되면 저수지로 가라'는 말을 남기고
자진해서 족재비의 먹이가 된다.
'잎싹'의 소원대로 부화가 되었다.
태어난 새끼는 병아리가 아닌 오리였다.
하지만, 비록 겉모습은 달랐지만 사랑으로 키우는 암탉 '잎싹'...,
'잎싹'은 자신이 품은 아기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마당을 찾지만,
모두는 존경심이나 경외심은 없고, 조롱과 멸시, 따돌림으로 결국 마당을 떠나 
저수지로 가서 새로운 생활을 하지만, 족제비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하루하루 불안함 속에서 살게 된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모든 고난을 이겨낸 아기 오리 '초록머리'는 멋진
청둥오리로 자라서 헤엄도 치고 날기도 하며, 
겨울을 맞아 그곳을 찾은 청둥오리 떼와 함께 지낸다.
겨울이 지날 무렵 '초록머리'는 일행과 함께 '잎싹'을 떠난다.
'초록머리'를 잘 키운 '잎싹'은 자신의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며 죽음을 준비한다.
그 죽음이란 바로 어미가 된 족제비의 새끼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 
또 다른 생명을 키우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내리는 눈을 아카시아 꽃잎이 떨어지는 거라 생각하며 행복한 죽음을 맞는다
이 작품은 알을 품어 병아리의 탄생을 보겠다는 소망을 간직하고 양계장을 나온
암탉 '잎싹'이 자기와 다르게 생긴 아기 오리를 지극한 사랑으로 키운 뒤 보내주고
제 목숨을 족제비에게 내어주기까지의 삶과 죽음,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소망과 자유, 
그리고 사랑을 실천해가는 삶을 아름답게 그린 장편동화이다.
이 작품에는 암탉 '잎싹'만큼이나 풍부한 개성과 다양한 삶의 유형을 가진 동물들이 등장한다.
양계장에 갇혀 배부르게 먹고 품지도 못할 알을 낳으면서 아무 생각없이 사는 '난용종 암탉', 
마당에서 수탉과 병아리와 함께 만족스럽게 살면서 혹시라도 누가 끼여들어 
그 생활을 흐트러뜨리지 않나 전전긍긍하는 '관상용 암탉', 
한 쪽 날개를 다쳤지만 자신의 본성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청둥오리 '나그네',
권위주의를 상징하는 '수탉', 자신의 본성을 망각하고 안락한 삶에 안주하는 '집오리 떼',
기회주의자의 전형인 '개'.....
[마당을 나온 암탉]은 주인공 '잎싹'이 소망을 굳게 간직하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과 독특하고 개성적인 등장인물의 다양한 삶을 통해 
어린이들로 하여금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과 
반성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이긴 하지만, 박진감 넘치는 탄탄한 구성과 풍부한 상징성, 
독특한 등장인물의 창조, 산뜻하고 감성적인 문체 등, 고도의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작품의 깊이는 물론, 진한 감동과 문학의 참맛을 듬뿍 느낄 수가 있다.
우연히 이 책을 접하고 서점을 찾았을 때만 해도 조금은 유치한(?) 듯한 느낌을 가진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단지 제목만 보고 우스꽝스럽게 생각한 것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암탉 '잎싹'의 '초록머리'에 대한 극진한 사랑, 
자기의 새끼가 아니었지만 베풀었던 헌신적인 모성애와 새로운 생명인 족제비의 아기들을 위해 
거리낌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은 누구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의 희망을 끝내 저버리지 않고 꿈을 펼쳤고, 
자신의 결정에 후회없이 행동함으로써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었다.
폐계로 전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며, 희망을 놓지않고 이루는 
당당한 잎싹'을 보면서 너무도 쉽게 포기하고 쉽게 지쳐버리는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어머니'란 도대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자기의 꿈을 위해 안락함을 버리고 힘든 길을 택했지만 
모두의 비난 속에서도 굳건히 버틸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어머니'일 것이다.
'여자는 약하다. 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한다.
제 자식도 못 키우겠다며 아무런 거리낌없이 버리는 인간들에 심금을 울리는...,
자기의 알이 아닌 청둥오리의 알..., 다르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 '잎싹', 참으로 존경스럽다.
첫 페이지를 열 때 다소 진부한 듯한 느낌이 있었으나 군데군데 김환영 그림작가의 
생동감있는 삽화로 말미암아 기분전환이 되었고, 
'잎싹'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초록머리'가 훌륭히 자라는 것을 
'잎싹' 만큼이나 바라는 마음이 이 책의 결론을 앞질러 나가 단숨에 일사천리로 독파하도록 만들었다.
족제비와의 처절한 전투, 자식을 위험에서 지키려는 엄마의 마음이 가슴을 후벼파는 듯하다.
제목이 '마당을 나온 암탉'인지라 단지 마당을 나와 들로, 저수지로 나다니는 자유로움만 생각했지만, 
'잎싹'이 족제비에게 물려가며 자신이 걸어다니던 마당을, 저수지를, 들판을 훨훨 날아가며 
보는 시선이 '꿈을 이룬 암탉'이란 걸 암시한다.
책을 펼친 동안은 엄마로 살던 '잎싹'의 모성애를 느꼈다면, 
책을 덮는 순간만큼은 어미가 되고 싶었던 '잎싹'이 비로소 자신의 가슴 깊숙히 숨겨져 있던 꿈, 
단지 마당으로 나오고 싶었던 것만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비상(飛翔)하는 순간일 것이다.
가을을 맞이하며 정말이지 너무도 여리고 섬세한 의인동화 한 편을 읽게 되어 감개무량이다.
마치 안도현 시인의 '연어'에서 처럼, 황선미 작가의 장편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은 
동화라고 하기보다는 교훈적이고 또 아름다운 한 편의 서사시라고 할만하다.
이 책은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 사고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오늘날 우리 기성세대들이 읽고 느껴야할 그런 류의 책이 아닐까 싶다.
모처럼 좋은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에 감사를 더하며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