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명소

청도읍성의 여름…, ① '도주관(道州館)'에 가다

靑松 권규학 2025. 6. 6. 17:05

<청도읍성 '도주관'>

 

청도읍성의 여름…,  '도주관(道州館)'에 가다

 

어느새 한 해의 허리가 반으로 꺾인 누리달 6월이다.

계절은 여름, 하루이틀 점차 무더위를 몰아오고,

더위에 발목이 묶여 한숨만 쉬기보다는 청도읍성을 거닐며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고자 '도주관(道州館)'을 찾았다.

 

'도주(道州)'란 '고려시대 때 청도군을 부르던 또 다른 이름'으로

청도읍성 서문(撫懷樓)과 마주한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양쪽에 동ㆍ서헌의 접객시설을 갖추어 이곳을 들르는 관원이 머물렀다.

<정청 & 좌ㆍ우익사>
<삼문>

 

조선 현종 11년(1670년)에 건립된 '도주관(道州館)'

'외국 사신이나 타 지역의 벼슬아치들을 대접하거나 머무는 숙소'로써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12호로 지정되었다.

<도주관 정청>
<정청 연등천장>
<정청의 전패>
<정청 대량의 물고기 그림>

 

중앙의 정당(정청) 건물에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가 모셔져 있어

지방 수령이 한 달에 두 번, 즉 초하루와 보름에 배례하였다고 하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정청 내부대량에는

특이하게 물고기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조선 중기 객사건물의 평면기능과 입면기능이 잘 나타나 있다.

<정청과 서헌(西軒) 사이 통로>
<좌익사(복원)>

 

파견된 관원이나 외국사신들이 머무는 접객시설인 ㆍ우 익사 중

좌익사 관리동ㆍ서헌(西軒)과 함께 한일합방(경술국치) 때 철거되었다가

2006년에 복원되었으며,

우익사 정면 6칸, 측면 3칸의 팔각지붕으로

일제 강점기 때 화양면사무소로 이용되었고,

동헌(東軒) '도주학원'으로 사용되다가

1956년 화양초등학교 옆으로 이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주관 입구 '척화비'>

 

도주관 입구에는 조선 고종 때 대원군이 양인을 배척하기 위해 세운 척화비가 있는데

도로변에 세워져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의지가 강력하게 드러나는 내용이 새삼 가슴을 뜨겁게 한다.

<곳간>
<서헌(西軒) 온돌방1>
<서헌(西軒) 온돌방2>
<동헌(東軒)1>
<동헌(東軒)2>
<동헌(東軒)3>

 

손님을 접대하는 곳이다 보니 곡식을 보관하는 곳간도 갖추고 있다.

동헌(東軒)과 서헌(西軒)은 외국사신이나 중앙관리들의 접견실로 활용하였고,

청도 제1경인 남산(오산/鰲山)의 소구릉 등성이에 동헌(東軒)의 자취가 남아 있다.

<도주관 입구>
<일각대문>
<건물 뒷편 온돌아궁이>
<도주관에서 보이는 남산 전경1>
<도주관에서 보이는 남산 전경2>

 

도주관(道州館)에서 바라보이는 청도 제1경 남산(오산/鰲山)의 모습이 아련한 하루!

후텁지근한 여름날씨를 극복하고 가라앉은 기분을 전환하고픈 사람들에게

'청도읍성' '도주관(道州館)'을 찾아

조선시대 건물양식을 습득하고 자연에 동화될 수 있길 바란다.

<청도읍성 '도주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