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자작글
수중월(水中月)
靑松 권규학
2023. 1. 23. 12:56
수중월(水中月)* / 청송 권규학
섣달 그믐날의 새벽녘
청도읍과 화양읍의 경계를 지나
물안개 어스름한 천변길을 달린다
수은등 은은한 길섶으로
은빛 머릿결을 풀어헤친 듯
스멀스멀, 물안개가 수면을 기어오르는
치매안심센터 길섶에 차를 세우고
파랑새다리*를 건너
덕절산 옆구리로 난 데크를 오른다
굽이굽이 열아홉 계단
얼핏 400미터는 넘을 듯한 길을 지나
덕사(德寺)*의 마당을 밟는다
땡강 땡강 땡그랑 땡강
밤에 듣는 고찰(古刹)의 풍경(風磬)* 소리
차가운 새벽공기에 묻어 귓불을 때릴 때
내가 세상을 사는 건지
세상이 나에게 들어온 건지
가슴에 치미는 격한 느낌이 살갑다
가냘픈 손톱을 닮은
새색시 눈썹을 닮은
청도천에 잠긴 여린 그믐달
시린 가슴에 상고대*로 필 제
물에 빠진 저 달은 서글프지만
달빛에 반짝이는 윤슬*은 더없이 곱다.(230123)
* 수중월(水中月) : 물속에 잠긴 달
* 파랑새다리 : 경북 청도군 화양읍 소라리 소재, 소라리와 송북리를 연결하는 다리
* 덕사(德寺) : 경북 청도군 화양읍 주구산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
* 풍경(風磬) : 금속이나 목재의 막대나 종 같은 것을 바람 부는 곳에 매달아 바람에 흔들려 소리를 내는 타악기
* 상고대 : 나무나 풀에 내려 눈처럼 된 서리
*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하는 순우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