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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白手) 보고서

靑松 권규학 2022. 12. 25. 16:15

 

백수(白手) 보고서 / 청송 권규학

 

 

1.

은퇴한 지 어느새 몇 해

쉴 만큼 쉬었고 놀만큼 놀았습니다

 

하루 쉬고 하루 놀고

그렇게 여섯 해가 훌쩍

모든 게 따분해질 무렵

뭔가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뭔가 할 일이 없을까, 주변을 둘러봐도

은퇴자에게 구직이란 하늘의 별따기

 

계절은 겨울…, 몹시 춥습니다

근래 겪어보지 못한 최강 한파(寒波)

속옷을 챙기고 두꺼운 옷을 껴입고도

어딘가 치워둔 난로를 찾습니다

 

문득 이건 아니란 느낌…, 뭘까요

난로보다는 위로가 필요한 시기라는.

 

2.

현직인 너의 하루는

정신없이 바쁠지라도

한 해는 언제인지 모르게 훌쩍 흘러가지만

 

백수인 나의 하루는

빈둥빈둥 하릴없을지라도

한 해는 오뉴월 한낮처럼 길기만 하구나.

 

3.

임인년(壬寅年)의 끝자락

세월 참 빠르기만 합니다

눈을 감으면 하루가 가고

감았다 뜨는 순간

한 주, 한 달이 사라집니다

 

코로나가 삼켜버린 서너 해

모두가 못살겠다 엄살이지만

하늘을 쳐다보며

그저, '허허~' 하고 웃습니다

 

아무런 대책도 방법도 없어

웃을 수밖에 없다는 게 슬프지만

노하고 슬퍼하면 내장에 주름이 잡히나

웃는 사람은 눈가에만 주름이 잡힌다기에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하릴없이 빈둥대는 것도 아닌

어쩌면, 행복한 입장일지도 모릅니다

이리 일렁 저리 술렁, 물처럼 흐르는 내가.(22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