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놀다
숲에서 놀다 / 청송 권규학
숲(자연)을 공부하노라면 날마다 신비롭고 경이로움을 배운다.
모를 때는 많은 것을 아는 듯하지만 실상 숲(자연)을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들 투성이다.
모를 땐 맞는지 틀린지도 모른 채 아는 척을 많이 하지만
정작 알고 난 뒤에는 조금이라도 석연찮은 걸 보게 되면
끝까지 파고들어 끝을 보고 나서야 스스로 마음의 평안을 갖게 되는...
정말이지 알아갈수록 모르는 것들 뿐이란 느낌을 받는다.
부산…,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이자 항구도시로 이름난 곳이다.
부산은 우리나라 지역 특성상 남쪽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유달리 상록수가 많다.
대충 아는 이름-지금에 이르러서야 안 이름이지만-으로
금목서, 은목서, 구골나무, 가시나무, 감탕나무, 아왜나무, 홍가시나무 등이 공원 가득 자라고 있고,
바닷가 쪽엔 동백나무와 사철나무, 천선과, 돈나무, 사스레피나무와 다양한 잡목들이,
가로수로 은행나무와 버즘나무, 대왕참나무, 백합나무, 후박나무, 먼나무, 녹나무가 주를 이룬다.
숲(자연)을 전혀 모를 때는 그저 사철 푸른색을 띠면 상록수요,
가을에 단풍이 들어 겨울에 낙엽이 지면 낙엽수로 알고 있었고,
잎이 뾰족하면 침엽수요, 넓은 잎이면 당연히 활엽수로 인식했었다.
하지만, 숲(자연)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숲 공부를 할 때마다 그 신비로움에 매료되었다.
겉모습만 대충 보면 이게 그것이고 그게 이것인 듯 똑같은(?) 형태를 띤 나무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저마다의 특성과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개체를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먼나무(?)'와 '아왜나무(?)'는 특이한 이름으로 내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부산 땅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아마도 2001년 7월 경이었지 싶다.
공직자로서 직종을 바꿔 제2의 인생을 향해 첫 발을 디딘 곳…!
부산은 산과 강과 바다를 두루 갖춘 도시로써 한 마디로 사람 살기 좋은 곳이다.
바다를 낀 좁은 땅에 도심(都心)이 형성됨에 따라 복잡한 도로망과 교통의 혼잡 등
약간의 불편은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좋은 점이 많은 도시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집을 나서면 곧바로 산에 오를 수 있고,
바다가 보고 싶은 사람은 몇 발자국만 움직이면 금세 바다에 이를 수 있으며,
강을 찾는 사람은 잠시만 이동하면 낙동강 하구둑과 넓은 을숙도 갈대밭을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부산엔 크고 작은 저수지와 수원지를 포함한 개천도 많다.
부산광역시의 금정산에서 발원하여 금정구, 동래구, 연제구를 거쳐 수영강으로 흘러드는
지방 하천 온천천을 비롯하여 초읍의 어린이대공원(성지곡수원지)과 사상구의 삼락공원,
북구의 화명공원, 금정구 선동의 해동수원지와 오륜대, 동래 정씨 대종중 소유 부산 화지공원과
UN공원과 인접한 대연동의 대연수목원, 이기대공원과 태종대를 포함한 바다를 끼고 있는
해수욕장(해운대, 광안리, 송정, 송도, 다대포) 주변의 잘 가꾸어진 숲은 물론
크고 작은 다수의 공원이 도심(都心)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고,
초보자로선 구별이 어렵지만 먼나무와 아왜나무, 후박나무와 목서, 구골나무 등
흔하지 않은 고급 수목들은 삶에 찌든 우리네 감성을 맑고 상큼하게 만들어 준다.
특히 상록수들의 녹색빛을 보노라면 눈이 시원해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금정봉(387m)을 필두로 금용산(152.3m), 황령산(427.9m), 금련산(400m),
배산(254.9m) 등 금정산맥 일련의 산과 공원에서 자라는 나무-편백나무와 화백나무,
측백나무와 삼나무, 전나무, 메타세쿼이아와 낙우송- 등, 거대 수목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가
복잡한 세상살이에 찌든 인간 삶에 힐링(치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건 덤이다.
부산 살이 16여 년…, 정년퇴직을 1년 남긴 2014년 5월, 전문적인 숲 공부를 시작했다.
원래 촌놈인지라 웬만한 사람보다는 시골살이에 대한 나름의 축적된 상식이 있긴 했지만
전문가들에 비하면 대학생과 유치원생 차이의 완전 초보였기에 시작은 쉽지가 않았다.
숲 선배들의 놀림거리 웃음 상대로 처음 숲 공부를 시작할 때가 생각난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알 수 있는 나무'가 '먼나무'라고 해서
정말 그런 줄 알고 일부러 멀리 떨어져 보았지만 그게 그것이었다.
'먼나무'로 알고 자세히 확인해 보면 '아왜나무'였고, 또 그와 비슷한 '후박나무'이기도 했다.
'먼나무'는 '멀리 있는 나무'를 말하는 게 아니었고, '뭔나무(?)' 역시 아니었다.
식물 분류학적으로 보면, 무환자나무속 감탕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원산지는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등에 분포하며, 난대 지방인 남쪽 섬 저지대의 숲이 많은 지역과
제주도와 전남, 경남 해안지역인 거제시와 같은 남부지역 등지에 많이 자생하며,
암갈색 가지에 높이는 약 10M로 자라며 어긋나기 잎차례로 두꺼운 타원형 잎에 털이 없다.
5~6월경 꽃이 피어 10월 경 빨간색의 열매를 달며 도시환경에 잘 적응하여
정원수나 가로수로 많이 활용되며, 뿌리와 나무껍질은 약재로도 활용된다.
'아왜나무'를 보고 '먼나무'니, '후박나무'니 하며 거짓으로 가르쳐 주는 선배들을 향해
'아, 왜?' 하며 신경질을 부리는 내 모습이 그들에겐 그리도 재미있는 놀잇감이었을 줄이야.
'아, 왜?'하고 되묻는 것으로 머릿속에 기억된 나무인 '아왜나무' 역시
나도 몰래 되돌려 질문하는 순간 그 나무의 이름이 각인되었다.
'아왜나무'는 인동과에 속하는 작은 키 나무로 중국과 일본, 대만에서 자생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와 남부지방에서 많이 자란다.
수고(樹高)는 최대 10m이며, 일명 '산호수(珊瑚樹)'로도 불리는 나무로
회색이나 회갈색의 나무껍질에 작은 껍질눈이 많으며, 마주나기 잎차례로 긴 타원형이다.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며, 조경수나 가로수로 많이 활용된다.
지금에서야 쉽게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처음 공부할 때로 되돌아간다면
지금 쓴 이 글들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할 게 뻔하다.
그 세월이 어느새 10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덕분에 쑥과 크로바 밖에 몰랐던 나의 머리에도 웬만한 풀꽃들의 이름과 생태가 들어찼고
동행들의 질문에 이것저것 막힘없이 척척 답을 하고 또 생태를 설명하는 등
'해설가'란 이름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성숙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풀꽃과 나무에만 국한되지 않고, 깊지는 않지만
하늘과 땅, 물속까지 두루 폭넓은 지식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물며 존재조차 몰랐던 그 흔하디 흔한 하루살이에서부터 강도래, 날도래, 도롱뇽 등
물속에 사는 동식물인 수서생물들까지 친구로 만들 수 있음이 참으로 행복이었다.
그보다 더욱 좋은 점은 숲(자연)을 알고 난 이후 삶과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저 풀이면 풀, 나무면 나무라고만 알았던 단순한 사고방식이
풀꽃과 함께 나무와 숲에 깃든 생명들을 보호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동료의식과 생명존중 및 자연환경을 보호해야겠다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생겨난 것이다.
숲은 산과 들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심(都心)의 곳곳이 숲이요, 자연생태계이다.
산림과 산림이 아닌 지역의 경계 지점인 임연부(숲의 가장자리)는 물론이려니와
건물이나 골목엔 어김없이 나무가 자라고 있고, 길섶엔 풀꽃들 천지다.
웬만한 도심(都心)이라면 한 두 개 정도의 작은 개울이나 개천이 있기 마련이다.
산책로나 계곡에만 가도 숱하게 만날 수 있는 풀꽃과 나무와 곤충과 수서생물들…,
초등학생 시절에 배웠던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와 같은 생소하면서도 생소하지 않은,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못한, 고급적이면서도 고급적이지 않은 평범한 자연어를 숱하게 접한다.
쉽게 말해서 '도시 숲'이라는 정말 쉬운 말을 에둘러 어렵게 설명하고 있다.
부산시에서는 '찾아가는 숲해설'이라는 프로그램이 성황을 이룬다.
'푸른도시가꾸기사업(푸도사)'이란 이름으로 부산시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있으며
금정구 금사동의 폐교된 금사중학교를 리모델링하여 '산림교육센터'를 개설,
유아에서부터 초중고, 대학생과 일반인들을 총망라하여 통합적인 숲 교육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규모의 숲 교육기관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만큼 교육을 담당하는 인력(산림교육전문가=숲해설가/숲치유사)과 예산 또한 필요하다.
그러하기에 부산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다양한 숲 교육기관의 설립은
부산시의 도시숲가꾸기사업의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부산시에서 추구하는 '푸른도시가꾸기사업'이 성공을 이루기까지에는
그 모든 조건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하리라 믿는다.
내가 사는 귀촌지인 이곳 청도에서도 부산만큼은 아닐지라도
천연적인 좋은 여건을 갖춘 만큼의 숲 교육 여건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환경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혼탁해지고 있다.
미래의 인간 삶은 의식주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한 때 '안녕(安寧)' 내지는 '복지(福祉)'라는 뜻의 '웰빙(well-being) 신드롬'이
우리 사회에 폭넓게 회자(膾炙)된 적이 있었다.
쉽게 말해서 '잘 먹고 잘 사는(잘 지내는) 것'을 말함이다.
생활의 빈곤을 경험할 당시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부자 되세요’하는 말이 인사였다.
그저 과정은 무시한 채 수단과 방법을 다해 '부자가 되면 된다'는 다분히 이기적인 말이다.
다시 말해서 과정은 어떻더라도 '부자만 된다면…,' 하는 결과만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부자만 될 수 있다면…, 부정부패를 저지르든, 동료를 팔고,
아내를 팔고, 가족을 팔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
'웰빙(well-being)'은 '먹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먹는다'는 본능적 개념을 떠나
'힐링(Healing)', 즉 '정신적 육체적 치유'의 지향이 목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힐링(Healing)'이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번거로운 일상에 싫증이 난 나머지 과거로의 안전한 복귀를 기원하고 있을 뿐,
더 이상의 전진(前進)이나 욕망, 기대가 부재하다는 데 있다.
그토록 '웰빙(well-being)'을 외치고, '힐링(Healing)'을 부르짖던 사람들이
지향하고자 하는 '참살이'와 '치유'의 근본 목적은 벗어던져 버리고
'참살이'와 '치유' 관련 상품이나 프로그램의 선전과 판매의 난장(亂場)만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웰빙(well-being)'도 좋고, '힐링(Healing)'도 좋지만 이제는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무엇이 되었든 우리의 삶을, 인류의 미래를 풍요롭게 살찌울 수 있다면 무엇이든 어떠랴.
하지만, 우리가 잘 살 수 있다고 할지라도 인간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이 지구상의 그 어떤 생물들도 우리 인간들로 인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류가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인류와 함께 살아가는 숲(자연)이 건강해야 한다.
숲(자연)이 피폐해지면 인류의 삶 역시 따라서 피폐해질 것이며,
숲(자연)이 풍요로워지면 인류의 삶 역시 아름답고도 풍성해질 것이 틀림없다.
웰빙에 좋다는 상품들과 이를 판매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거리,
힐링에 좋은 프로그램과 이를 운용하는 명상 센터, 캠프만 요란한 골목…,
명분만 있으면 허수아비를 간판으로 내걸고서라도 제 잇속 채우기에만 급급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활개를 치는 삭막해진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숲(자연) 교육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숲(자연) 속에서 놀고 뛰고 꿈을 꿀 수 있는…,
숲(자연) 속에서 편히 숨 쉴 수 있는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겨울 목전에서 빛바랜 채 떨고 있는 마지막 잎새의 미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22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