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권규학 2021. 10. 30. 09:44

 

 

핑계 / 청송 권규학

 

 

뜨락의 화살나무 울타리가 붉어집니다

얼굴을 붉히는 화살나무잎을 보노라면

첫사랑 그녀를 만났을 때처럼
덩달아 붉어지는 가녀린 마음


이순(耳順)의 나이를 넘길 때까지

몇 번의 붉은 잎을 피워냈을까
가을이란 계절은 가끔씩

번지 없는 감성에 불을 지피곤 합니다

 

코로나가 삼켜버린 이 땅의 가을

주홍빛 조등(弔燈)이 걸린 감나무 가지엔

휑뎅그레…, 까치밥만 우듬지를 지키고

바람은 계절을 앞서 을씨년스럽습니다

 

인간의 탈을 쓴 냉혹한 동물들이 사는 세상

그곳에서 잔인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나

정녕 거칠고 험한 이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고자 노력한다지

답게 산다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디 있을까

스스로 하지 못하는 것

단지 하지 못한다는 것

안 되는 것이라고 핑계 댈 뿐인 것을.(21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