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자작글

가을, 청도천의 밤

靑松 권규학 2021. 10. 20. 20:29

 

 

가을, 청도천의 밤 / 청송 권규학

 

 

가을빛 무르익은 10월의 밤

청도천 둑길을 나 홀로 걷다

합천리 눌미리 소라리를 지나

송북리 초입, 파랑새 다리를 지날 제

주구산(走狗山)* 끝자락 덕사(德寺)*

뎅강거리는 풍경(風磬) 소리 아련하고

교교한 달빛, 바쁜 발길을 붙잡는

 

휘영청 밝은 달

하늘의 달이 물에 빠져 일렁인다

두 눈에 가득 찬 달

달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니

조각조각, 물결 따라 이지러지는 파문(波紋)

몽땅 부서져 흩어지기 전에

한 움큼, 두 손에 담으려 하나

물 위에 뜬 저 달

줄줄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다

 

본시 있었던 게 없었던 것이요

없었던 것 또한 원래 있었던 것

많이 비우면 비워낸 만큼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는 법

본디 비어 있던 것이라

모든 게 헛되고 또 헛된 삶의 진리를 일깨운다

 

혼자 걷는 산책길이 늘 외롭듯이

혼자 걷는 삶의 길도 마냥 쓸쓸하다

둘이 걷는 밤길이 덜 외롭듯이

함께하는 삶의 길이 더 따뜻하고 행복하다

하지만, 그 길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이며

또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엄습하는 가을밤의 농익은 한기(寒氣)

인기척에 놀라 숨을 죽이는 풀벌레들

문득

시나브로* 시린 옆구리를 보듬어

달보드레*한 청도천 윤슬*을 떠나는.(211020)

 

 

* 주구산(走狗山) : 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소라리 소재의 산(山)으로 덕절이라고도 함

* 덕사(德寺) : 청도군 화양읍 주구산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

* 시나브로 :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을 뜻하는 순 우리말

* 달보드레 : 달달하고 부드럽다

*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