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청도천의 밤
가을, 청도천의 밤 / 청송 권규학
가을빛 무르익은 10월의 밤
청도천 둑길을 나 홀로 걷다
합천리 눌미리 소라리를 지나
송북리 초입, 파랑새 다리를 지날 제
주구산(走狗山)* 끝자락 덕사(德寺)*
뎅강거리는 풍경(風磬) 소리 아련하고
교교한 달빛, 바쁜 발길을 붙잡는다
휘영청 밝은 달
하늘의 달이 물에 빠져 일렁인다
두 눈에 가득 찬 달
달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니
조각조각, 물결 따라 이지러지는 파문(波紋)
몽땅 부서져 흩어지기 전에
한 움큼, 두 손에 담으려 하나
물 위에 뜬 저 달
줄줄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다
본시 있었던 게 없었던 것이요
없었던 것 또한 원래 있었던 것
많이 비우면 비워낸 만큼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는 법
본디 비어 있던 것이라
모든 게 헛되고 또 헛된 삶의 진리를 일깨운다
혼자 걷는 산책길이 늘 외롭듯이
혼자 걷는 삶의 길도 마냥 쓸쓸하다
둘이 걷는 밤길이 덜 외롭듯이
함께하는 삶의 길이 더 따뜻하고 행복하다
하지만, 그 길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이며
또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엄습하는 가을밤의 농익은 한기(寒氣)
인기척에 놀라 숨을 죽이는 풀벌레들
문득
시나브로* 시린 옆구리를 보듬어
달보드레*한 청도천 윤슬*을 떠나는.(211020)
* 주구산(走狗山)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소라리 소재의 산(山)으로 덕절산이라고도 함
* 덕사(德寺) : 청도군 화양읍 주구산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
* 시나브로 :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을 뜻하는 순 우리말
* 달보드레 : 달달하고 부드럽다
*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