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아 산에서 살고 싶은
산이 좋아 산에서 살고 싶은/청송 권규학
코로나 시대!
과연 '시대'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역대 처음 접해보는 신종 감염병의 습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찾는다.
집콕, 방콕의 답답한 공간을 벗어나서 산길을 걸음으로써 갑갑함을 털어내려는 모습,
어쩌면 요즘 같은 세상에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산은 우리 인간들의 삶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나무가 많은 곳을 '삼림(森林)'이라고 하고, 산의 나무를 '산림(山林)'이라고 하며
나무뿐이 아닌, 나무와 풀이 한데 어우러진 곳을 '숲(林)'이라고 규정한다.
삼림(森林)이든 산림(山林)이든 숲(林)이든…,
그곳에는 인간의 발걸음보다 동물의 활동이 더 왕성하다.
문명 이전에 숲이 있었다면 문명 이후에는 숲과 환경의 파괴로 연결된다.
작년 한 해 태양광 발전소의 난개발로 전국의 숲 2,443만㎥(축구장 3,300개 규모)가
사라졌다는 통계를 보면 그 말이 입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구촌(地球村)의 환경오염이 심각해질수록 사람들은 도심(都心)을 떠나 시골을 찾는다.
한 마디로 귀농(歸農)이나 귀어(歸漁) 등 귀촌자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복잡한 도시가 아닌, 한가한 시골에서 노후를 보내겠다는 것이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에게는 힐링의 모델이자 로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막연한 동경이자 로망으로 귀촌한 사람들 중에는 치유의 삶을 위하는 게 아니라
귀농이나 귀촌을 통해 부(富)를 축적함으로써 자신의 경제적 실리를 챙기려는 사람도 있다.
자연이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자연석들을 불법 채취하고
진달래나 철쭉은 물론 소나무를 비롯한 다량의 자연 수목들을 제 것인 양 마음대로 뽑아
자기 소유의 건물이나 토지에 옮겨 심는가 하면, 기존의 토착민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등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는 사람들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귀촌을 통해 시골생활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좋은 집을 짓고
재물을 모으려는 궁리를 하기 전에 마음부터 바로잡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물론 세상의 어떤 것도 원래부터 임자가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의 것을 제맘대로 몰래 가져가는 것은 분명 불법이요, 잘못된 일이다.
우리의 시골인심을 보노라면,
내 것이라도 내 것이 아닌 양 여겨 나누고, 내 것도 남의 것인 양 욕심을 삼가야 할 때가 많다.
시골을 찾는 사람들 중 일부는 시골사람들의 집단이기주의와 텃세 때문에 정착하는 게
힘이 든다고 말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한 지역에 자리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 잠시 잠깐
스쳐가는 이방인들의 이주(移住)를 반겨할 리가 만무하다.
이주(移住)하려는 사람과 토착민들과는 오랜 기간을 두고 서로 마음을 나누고 이해해야만
합치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토착민보다는 이주민들의 마음이 더 급한 게 문제이다.
시골에 정착하려는 도시민들은 자기식-그저 주변에서 들어왔던 얄팍한 지식- 대로 무작정
시골 사람들을 대하려고만 한다.
일단 마을회관에 들러 인사하고, 이장을 비롯한 마을의 유지들과 관계를 트고,
마을에 행사가 있을 때 소정의 금일봉을 제공하는 등 시골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접근방법을 고집함으로써 시골에 정착하기도 전에 토착민들과의
갈등만 유발되어 상호 간 불신이 초래되고 서로 간 오해의 골만 깊어지는 것이다.
오해란, '상대를 이해하고 있다는 확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주민들이 토착민들을 이해했다는 그릇된 확신을 마음에서 지워버리지 않는 한 토착민들의
'텃세'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전원(田園) 근처의 산을 찾는다.
사람이 산을 찾는 이유는 '인간이 인간의 허물을 들추어 내려는 것과는 달리
산은 가능하면 인간의 허물을 덮어주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파에 시달리고 지친 심신을 씻기에는 산(山)만한 곳이 없다.
물론 어머니의 품속 같다는 '바다'도 있지만 내륙지역인 이곳에서 바다를 접하기엔 쉽지 않은
일이고 코로나가 만연한 요즘 같은 날엔 감히 집을 떠나 확실치 않은 곳으로 이동한다는 건
섶을 지고 불더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산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65%가 산이다.
산에 가면 풀이 있고, 꽃이 있고, 나무가 있고, 그들과 어울려 사는 생명들이 즐비하다.
그들과의 진지한 만남을 가져보고 싶다. 그들과 대화의 장을 만들고 싶다.
콘크리트 속에 갇혀 산 수십 년 간의 삶을 털어내고 열린 자연으로 돌아눕고 싶다.
더불어 이런저런 사연으로 얼룩진 지난 삶의 흔적들을 깨끗이 털어내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삶의 기억들을 완전히 잊을 순 없겠지만 진정으로 잊고 싶을 뿐이다.
진정으로 잊고 싶다는 건 어쩌면,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기보다는 지난 삶과의 화해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연으로 돌아누우려는 내 작은 행동이 왠지 부끄럽기만 하다.
어떤 부끄러움은 더 많은 아픔과의 동반이 필요할 것이다.
설령 그럴지라도 더 많이 아파하고,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삶이길 고대한다.
아울러 다사다난한 2020년 한 해를 보내고 2021년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지구촌(地球村)을 덮은 코로나의 먹구름이 말끔히 걷히고
해맑은 세상이 오길 간절히 소망한다.(21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