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자작글

졸작과 걸작 사이

靑松 권규학 2021. 1. 15. 21:07

 

 

<<수필>> 졸작과 걸작 사이 / 청송 권규학

 

 

책이 좋아 많은(?) 책을 읽었고, 글이 좋아서 많은 글을 썼으며,

시가 좋아서 시답지 않은 시를 부지런히 많이도 지었다.

강산이 네 번씩이나 바뀔 세월 동안 늘 변함없이 그렇게 살았다.

어떨 땐, 수필인지 산문인지 시인지도 모를 넋두리를 수도 없이 널부러 놓고선

혼자 만족해서 시시덕 거렸고, 또 어떤 때는 문장 같지도 않은 문장을 끄적이고선

제멋에 겨워 헤벌레 할 때도 적지 않았다.

어쩌다가 수필가가 되었고, 정말 어쩌다가 시인이란 이름도 어부지리로 챙겼다.

하지만, 문인의 이름으로 빛나는 별이 되고픈 마음은 없다.-그럴만한 실력도 없지만-

그저 좋아하는 책을 벗 삼아 좋아하는 글과 함께

더 좋아하는 자연(숲)에 묻혀 먼지의 삶을 이어가고 싶을 뿐…,

누군가 그랬다.

'남들도 쓸 수 있는, 남들도 생각할 수 있는 평범 평이한 글은 시가 될 수 없다'고

참으로 맞는 말이고, 가슴 따끔하게 다가서는 충고의 말이기도 하다.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배움의 도(道)'로 삼아 가슴에 아로새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말에 전적으로 통감한다는 건 아니다.

익명(匿名)의 숲 속에 숨어 꾀꼬리 울음을 우는 것보다는

널린 광장에서 울부짖는 늑대의 울음소리가 더 큰 울림을 준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졸작과 걸작의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아무리 위대한 화가라고 할지라도 그가 그린 그림 모두가 걸작으로 평가받을 수는 없다.

아무리 훌륭한 음악가라고 해도 그 사람의 모든 곡이 걸작일 수도 없을뿐더러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고 할지라도 그가 쓴 모든 작품이 걸작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때론 걸작이, 또 때론 졸작이 태어날 수도 있는 법, 졸작 없는 걸작이란 있을 수 없다.

별이 빛날 수 있는 건, 그 빛남의 배경이 되는 깜깜한 밤이 있어야 하고

혼자 빛이 날 수가 없듯이 자신을 빛나게 해 준 어두운 밤하늘에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젠 정녕 그러고 싶다.

문인이라고 하기엔, 수필가라고 하기엔, 시인이라고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보잘것없지만

어떤 틀을 정해 놓고 꿰어 맞추려는 사람들의 그 치졸함(?)으로부터 탈출하고 싶다.

미리 언급했듯이 '문인의 이름으로 빛나는 별이 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기에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느낌 있는 대로 거침없이 글을 쓰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비록 완전체는 못될지라도 수없이 많은 습작과 졸작을 거치노라면

언젠가는 걸작의 수준에 도달할 날도 있으리라 믿기에….

그렇기에 글을 읽는 이들에게 결과보다는 과정의 소중함도 알아주길 기대해 본다.

늘 걸작만을 창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그럴 순 없을지라도 나만이 간직할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를 걸림 없이

담아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분방한 오늘날의 의식세계에 있어서 아직까지도 정형의 틀에 사고(思考)를 가둬 놓고

무엇이 잘못이고 또 무엇이 잘된 것인지를 지적하는 자기만의 낡은 사고방식들…,

그런 고정관념의 오류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마스크 뒤에 숨어 살아야하는 요즘, 다사다난이란 말이 현실화된 2021년의 출발점에서

모자란 점은 더불어 보완하고 더 나은 새해를 만들어 가길 스스로 다짐하는….(21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