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혼자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2) / 청송 권규학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단지 조금 힘이 들고
조금 더 불편한 삶일 뿐입니다
남들이 생각하는 고독(孤獨)
남들이 생각하는 외로움
그런 것들은 마음에 달렸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지금의 삶이기에
무모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용기였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후회(後悔)가 아닙니다
미래를 향한 아쉬움일 뿐
어디 없나요
안쓰럽고 안타까운 세상살이
헛헛한 마음자리를 채워 줄
따뜻한 사랑의 새싹은.(2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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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매달린 삶의 스트레스에 내 몸이 굴복한 어느 날,
밀려드는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병원엘 갔습니다.
병원은 역시 갈 곳이 못되었습니다.
이른 아침시간이었지만 진료대기실은 북새통이었습니다.
진료 접수를 마치고 기다리는 시간, 한마디로 일일 여삼추(一日 如三秋)였습니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마친 사람들이
한참 지나갔음에도 대기실은 여전히 혼잡스러웠습니다.
드디어 내 차례…!
이름이 호명되어 진료실에 들어서는 순간마저도 괜히 '미안함'이 뭉클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하고 마주친 의료진…!
정기적으로 안면을 익힌 의사와 간호사였지만 볼 때마다 새롭습니다.
의자에 앉자마자 간호사님의 기본적인 조치-혈압체크, 당 검사-가 이루어집니다.
이어지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들…, '몸 상태는 어떠세요?',
'00 부위는 반응이 괜찮은가요?', '다른 불편한 점은 없나요?', '기타 등등…!'
그날따라 진료해야 할 것도 많았습니다.
혈액검사, 초음파, CT촬영까지…, 결과 확인 차 의사 선생님과 마주합니다.
'입원하십시오. 그리고 당장 수술하십시오.'
혈압약을 타러 가볍게 생각하고 나왔다가 이런저런 검사만 세 시간…,
갑자기 입원과 수술 통보를 받으니 참으로 황당무계(?)한 기분이었습니다.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대구 소재 다른 전문병원으로 이원(移院),
입원(入院)과 수술로 이어지는 신속한 조치였습니다.
이순(耳順)을 훌쩍 넘긴 이 나이 되도록 숱하게 병원을 들락거렸지만
이토록 신속하게 처리되는 병원행정(?)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어찌해야 할지…?
한마디로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막무가내 입원 조치하려는 병원 측과 실랑이할 수도 없고 해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의사 선생님과 상호 협의(?) 후
검사 관련 CD와 관련 자료를 받아 들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담낭염'…, 쓸개 조직에 돌(담석)이 염증을 발생케 하여 염증부위가 터지면
'복막염'으로 확산될 수도 있어서 서둘렀다는 병원 측의 주장이었습니다.
쓸개 부위의 담석에 대해선 이미 십수 년 전에 확인하여 알고 있던 바였기에
그제야 불안했던 마음을 풀 수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부연 설명에 의하면, 쓸개 담석이 평소엔 가만히 있다가도
신경과민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극심한 통증과 같은 이상 증상을 보일 수도 있다는…,
요즈음의 내 삶이 그랬습니다.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사건사고(?)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일들…!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던가요.
감당하지 못할 여러 가지 난제(難題)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쳐
혼자 몸으로 감당해내기엔 아무래도 무리였던가 봅니다.
입에 맞는 음식이 없습니다.
아니, 음식이 없는 게 아니라
'입맛'이 달아나 어떤 음식도 입맛을 따라주지 못한다는 게 맞는 표현인 듯합니다.
혼자서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몸이 성할 때, 힘든 일이 없을 때라면 그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어서 좋다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몸에 이상 징후가 올 때나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일이 한꺼번에 엉킬 때면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고민과 함께 짙은 '외로움'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혼자라는 건 '고독(孤獨)합니다'. 아니, '외롭습니다'.
고독과 외로움은 '혼자 있는 상태'라는 의미로는 비슷하지만
사실 그 뜻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고독(孤獨)'을 '진정한 자신이 되기 위해서 겪는 시간'으로 본다면
'외로움'이란 '다른 사람의 부재(不在)로 인한 결여된 감정'을 말함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겪는 지금의 이 감정 세계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고독(孤獨)'인가? 아닙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듯합니다.
그렇다면 '외로움'인가? 어쩌면 '외로움' 쪽에 더 무게가 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선택한 지금의 삶이 고독이 아닌 외로움이라면 '아쉬워해서도 안 될 일'입니다.
목표를 이루고자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왔기에 더는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 잠시
'아쉬움'을 느낄지언정 '후회(後悔)'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겉옷 인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될지 모르고 시작한 '무모함'이 아닌, 당연히 지금의 결과를 알면서도
당당하게 시작한 '용기(勇氣)의 산물'이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냥 살아온 삶에 대해 '후회(後悔)'란 꼬리표를 달아둘 수밖에 없다는…!
앞으로 혼자 살아가는 삶의 무게는
지금보다 더 무거워질지는 몰라도 가벼워질 리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보다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압니다.
'무모한 행동'이기보다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문득 나의 오늘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이 안쓰러워집니다.
이런 마음 안 텅 빈자리에 싹이 틀 사랑이란 이름…, 어디 없을까요.(20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