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자작글

오디를 따며

靑松 권규학 2020. 7. 4. 11:04

 

 

오디를 따며 / 청송 권규학

 

 

30도의 폭염이 쏟아지는 날

뽕밭에 들어 오디를 딴다

뽕나무 신이 화가 났는지

멀쩡하던 하늘의 태양이 열을 내고

완만하던 산이 갑자기 꼬리를 일으켜 세운다

 

발끝을 모아 천근추 자세를 취하고

뽕나무 가지에 숨어 땡볕을 피해 보지만

비탈은 쉴 새 없이 발목을 끌어당기고

가지를 뚫고 들어오는 태양의 입김이

인내심의 한계치를 갈아치운다

하지만, 눈앞의 오디를 보며

그 모든 고통을 잊은 듯 참아낸다

 

농익은 오디는 부끄러움이 많다

살짝 눈빛만 마주쳐도

슬그머니, 가지를 잡은 손을 놓고

미끄러지듯 풀숲으로 숨어버리는…,

 

아!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새콤달콤 맛깔난 오디 한 톨

어느 여인의 입술이 이 맛을 이기리.(20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