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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향기(香氣)

靑松 권규학 2020. 3. 5. 15:13

 

 

봄의 향기(香氣) / 청송 권규학

 

 

봄 향기 퍼지는 전원의 뜨락

앞다투어 돋아나는 풀꽃들

새하얀 치아를 닮은 별꽃

에메랄드 빛깔의 봄까치꽃

냉이 꽃다지 지칭개, 그리고

뽀리뱅이가 처진 잎을 추켜올리고

돌나물 덩굴이 벽을 기어오르는

어느새

봄의 전령이 문지방까지 숨어들었다

 

예쁜 모습의 풀꽃들

한참을 지켜보다 마음을 다잡는다

도라지꽃을 기대하는 밭에서

산삼 싹이 난다고 한들 기뻐할까

발본색원(拔本塞源) 삭초제근(削草除根)

미안함을 속마음에 감추고

뽑고 솎고 갈무리를 한다

 

상추와 겨울초 씨앗을 뿌리고

봉숭아 해바라기 백일홍 꽃씨도

제자리를 잡은 영산홍 명자꽃

뜰 안 가득 함께 피어날 봄꽃들

창 너머로 환히 웃는

그들의 예쁜 모습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200305)

 

 

뜨락을 정리하다가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전화를 건다.

'이게 누구야, 벌써 4년이 되었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수화기 저 쪽에서 들려오는 음성…,

정년퇴임을 앞두고 숲 공부를 함께했던 지인(知人)의 목소리다.

'산과 들이 속삭이고 있어요.'

'개불알풀이 함께 노래하자고 해요.'

'언제 가까운 공원으로 에코 나들이 가요.'

지인(知人)은 금세 숲길을 걷는 듯 들뜬 목소리가 또랑또랑하다.

그에게선 늘 상큼한 향기가 난다.

자연을 좋아하고, 숲을 좋아하고, 친환경적인 풍경을 노래하는 지인(知人),

자연과 함께하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자연의 냄새가 배어드는가 보다.

수화기 저쪽에서 들리는 지인(知人)의 목소리에는 벌써 봄 향기가 물씬하다.

뜨락의 풀꽃들에게서 봄의 향기를 느꼈듯이 지인(知人)도 역시

하루가 다르게 들썩이는 들녘에서 생동하는 봄의 소리를 들었으리라.

 

화단 정리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전화 알람이 울린다.

오랜만에 아이에게서 온 전화다.

한동안 아이 목소리 듣는 게 쉽지 않았기에 반가움보다는 먼저 덜컥 겁이 난다.

전화를 하면 당연히 안부를 묻고 또 일상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아이에게서 오는 전화의 대부분은 용돈 문제이거나 좋지 않은 일(?)의 연장이었기에.

'아빠! 어떻게 지내세요? 코로나19 관련 문제는 없나요?'

일단은 안부와 함께 시국 관련 이슈를 물어온다.

어쩐 일인가 싶어 몇 마디 상대를 하노라니 금세 금전적인 문제로 몰아간다.

'방을 따로 얻었는데 보증금은, 월세는, 생활비는'…. 그리고는

'코로나 19 때문에 일자리조차 없어 힘들다'는….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들…!

'직장문제도 제대로 되질 않아 생활고에 시달리니 도와달라'는…. 결론은 버킹검이다.

 

지인(知人)의 목소리에선 맑고 청량한 숲 향기를 맡았는데

자식에게선 왜 자연의 향기가 아닌 인간 삶의 찌든 냄새가 날까?

은퇴하여 자연에 묻힌 내게서 아직까지도 돈 냄새가 나는 걸까?

부모 된 입장에서 자식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느꺼운 일이다.

자식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들에게 후의(厚意)를 베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그럴 능력만 있다면 폭넓은 기부와 봉사를 서슴지 않을 것이지만

지금의 여건으로선 그럴 처지가 못되기에 그저 마음뿐, 손사래를 칠 수밖에 없다.

이순(耳順)을 한참이나 넘긴 이 시점에서 자식에게 도움을 받을 순 없을지라도

다 큰 자식의 뒷바라지에 전전긍긍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누구의 잘못일까?

도움을 바라는 아이, 아니면 도움을 주지 못해 설레발을 치는 나의 잘못인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이 사회의 원초적이고도 구조적인 문제일까?

한편 답답하고, 다른 한편으론 안타까움이 봇물처럼 흐른다.

 

어찌하랴. 다른 이도 아닌 하나뿐인 자식임에야.

그래도 아직은 나에게서 '돈 냄새'가 나는 모양이다.

자연의 향기가 아닌, 삶에 찌든 돈 냄새일지라도 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 전화 한 통 오지 않는 것보다야 좋지 않겠는가.

돈이란 건 있고 없고를 따지는 것보다는 쓸 때와 아낄 때를 구분해야 한다.

내가 힘들더라도 쓸 수 있을 때 쓴다면 그게 곧 행복이다.

가진 게 많지 않지만 능력 범위 내에서는 쓰고자 한다.

그렇게 하노라면 부모 자식 간의 갈등으로부터 벗어나 서로의 마음이 편하지 않겠는가.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 보다는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지는가에 있다고 본다

풍요 속에서는 타락하기가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과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

'있다고 한들 원래 있던 것이요, 없다고 한들 원래 없었던 것'이어늘

'위를 보고 견주면 늘 모자라지만 아래를 보고 견주면 늘 풍족하다'는데 위안을 받으며

오늘도 비운 마음에 작은 행복으로 하루를 갈무리한다.

부자가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건 쉽지만 가난한 자가 하기는 쉽질 않다.

하지만, 부자가 가난한 자를 돕는 것보다 가난한 자가 돕는 일이 더 많은 세상,

어찌 생각하는가, 이런 모습이 우리 사회의 참모습인 것을.(20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