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자작글

내려놓지 못하면 짊어 질 수밖에

靑松 권규학 2018. 2. 15. 14:33

 

 

내려놓지 못하면 짊어 질 수밖에 / 청송 권규학

 

 

정년퇴직의 장벽 앞에서

어깨를 좁혀 지낸 지 두 해

무거운 발걸음으로 찾은 예배당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벽에 걸린 성경 말씀에 시선이 꽂힌다

수고는 아니더라도 짐을 진 건 맞기에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그저 내려놓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련가

문득, 산행길 암자 돌부처 사이

방하착(放下着)*, 음각(陰刻)이 떠오른다

 

아무리 깊고 위험한 물이라도

속이 훤히 보이면 선뜻 발을 들여놓지만

속이 보이지 않는 흙탕물엔 머뭇거리듯

 

이순(耳順) 갑자(甲子) 지나고서

마음 안 욕심을 비우지 못할 양이면

어쩔 수 없이 착득거(着得去)*할 수밖에.(180215)

 

* 방하착(放下着) : '무소유'를 의미하는 불교 용어. '손을 내려 밑에 둔다'는 뜻

* 착득거(着得去) : '마음에 있는 모두를 그대로 지니고 떠나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