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자작글

가을과 겨울 사이

靑松 권규학 2017. 12. 8. 19:01

 

 

가을과 겨울 사이/청송 권규학

 

 

1.

만추(晩秋)에 어울리는 짙은 향취

차가운 바람과 즐기고 싶어

초겨울, 열차여행의 옷을 입다

 

문득

잎을 떨군 나무 위에

나만의 집을 짓고 싶은…,

 

길섶으로

가을을 기록하는 바람과 억새

그들의 풍경을 두 눈에 담는다

그곳에, 뭔가 있었다

 

가볍지 않은 가벼움

무겁지 않은 무거움

비움과 채움의 흔적이다

 

비움이 있기에 채울 수 있고

채움이 있기에 다시 비울 수 있는

여행이 주는 안식을 맛보는.

 

2.

양버즘 나뭇잎이 거리를 뒤덮었다

그리움을 찾으러

그리워할 대상을 물색해 본다

 

새삼

교복차림의 고교시절이 떠오른다

스스스-

을씨년스런 바람이 나뭇잎을 긁어모으면

나무들이 계절의 향기를 널리 퍼뜨린다

 

실로 눈물겨운 만남이 아닐 수 없다

차창 가에 부딪히는

아름다운 서정시의 낭송이 아름답다

 

휑당그레-, 다랑논이 썰렁하다

서정시집 돌담 위

누런 호박 덩이가 가을 논 구경에 한창이다

 

세월을 낚는 농부와

언덕배기를 지키는 우공(牛公)

농촌이 맺어준 자연의 한 쌍이 아름다운….

 

3.

바람이 짧게 머물다 흩어지면

동행의 존재가 더욱 빛이 나고

추억의 이야기 소리도 멀리 퍼진다

 

함께 걸어 좋은 길

만추(晩秋)의 하루가 바람으로 스러진다

초동(初冬)의 하루가 희망으로 일어선다

 

사람이 곧 풍경이듯이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불멸의 이상향을 꿈꾸는 사람처럼

황무지 위에서 희망을 쏜다

한 편의 시를 쓴다

 

시는 쓰는 게 아니라 짓는 것이라기에

밥을 짓듯이 정성을 다한다

옷을 깁듯이 열정을 쏟는다

짓는 게 아니라 지어질 수 있도록.(17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