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자작글
가을 들녘에서
靑松 권규학
2017. 9. 11. 10:32
가을 들녘에서 / 청송 권규학
초가을, 들길을 걷는다
윤달의 그 지독한 뙤약볕을 감내하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결실을 맺는
가을이 풍기는 향기가 사뭇 상큼하다
과수원의 사과도
밭둑 가장자리의 대추도
마당 울타리의 감나무, 석류나무도
제각각 볼그랗게 열매를 매단다
매운맛을 품고 살아야
꽃 한 송이라도 피울 수 있는 걸까
파란 고추도 끝내 참지 못하고
붉은 빛깔 속울음을 쏟아낸다
풀꽃은 풀꽃의 모습으로
나무는 또 나무 본연의 모습으로
풀벌레와 새들과 숲에 사는 동물들까지
제 모습을 찾으려는 안간힘이 대견하다
이 가을에 나는 무엇을 하며 지낼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다른 그 어떤 상처보다 깊다기에
그저 들녘을 거닐며 가을을 느끼고 싶을 뿐.(17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