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서 평

로버트슨 데이비스(문학 사상사)의 '숨어있는 남자'

靑松 권규학 2017. 7. 22. 23:23
    로버트슨 데이비스(문학 사상사)의
    
    '숨어있는 남자'를 읽고
    
    
    날이 추워지면 말없이 잎을 하나, 둘씩 떨려 보내는 가을 나무.
    노랗고 붉은 낙엽을 바라보니 문득 현자의 말이 그리워진다.
    삶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럴 때 책을 찾는다.
    삶의 경험이 오랫동안 녹아 진국이 묻어나는, 한 장을 넘길 때마다 풍성한 상상력 속에서 
    삶의 신비와 아픔이 묻어나는 그런 책을 찾는다.
    백발의 한 노인이 엷은 미소를 띄운 채 독자를 바라본다.
    물기어린 눈에서는 이상한 광채가 비쳐 내게만 살짝 낙엽의 비밀을 알려 줄 듯 싶다.  
    옛 이야기 속에나 나옴직한 얼굴, 여든 두 살의 현자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란 어떤 것일까.
    토론토의 과거를 기획물로 다루는 신문의 여기자가 어느 날, 
    진단의학 교수이며 개업의사인 훌라 박사를 찾아온다. 
    홉스 신부의 죽음에 대해 알고 싶다는 것이다.       
    시체를 가로막는 챨리 신부 때문에 사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며 
    훌라는 자신을 둘러싼 두 친구와 이웃여자들의 삶을 회상한다.  
    그리고 차츰 죽음의 비밀에 접근하며 여기자는 그의 이야기를 토대로 캐나다의 역사를 서술한다.
    한 친구는 합리성이나 질시보다 여유와 풍성함을 지닌 가정에서 자라 문학교수가 된다.  
    그는 삶을 즐길 줄 알고 여자와 유머를 사랑한다.
    그의 아내가 훌라와 만나는 사실을 탐정을 통해 알아내지만, 
    한 여자가 두 남자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며 셋이 만나 우정을 돈독히 다진다.
    또다른 친구는 가구도 집안도 완벽함을 추구하는 추상적인 가정에서 자란다.
    어릴 적에는 종교와 시가 합쳐져야 한다고 믿었지만 
    어느 날 그리스도를 꿈에 본 후 그의 명령에 따라 성직자가 된다.
    그는 마음을 구하기 위해 홉스 신부를 성인으로 만들려고 그를 죽인다.
    그러나 오히려 어느 광신도에 의해 그곳에서 추방되어 황폐한 외지에서 알콜중독이 되어 외롭게 죽는다.
    어릴 적에 주술에 가까운 민간요법으로 병이 나았던 훌라는 인간의 병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는 한 친구의 용서와 또 다른 친구의 죽음을 통해 아름다움과 추함을 모두 지닌 
    인간본성에 대한 이해 없이는 병을 고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캐나다의 작가 로버트슨 데이비스는 젊은 시절에 영국에 유학하여 배우가 되었고, 
    고국에 돌아와서는 신문사의 발행인으로 칼럼을 썼으며, 
    만년에는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많은 희곡과 소설을 썼다.
    그가 여든 둘이 되어 발표한 '숨어있는 남자(The Cunning Man)'는 최고의 걸작으로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어 오던 그에게 상을 안겨 줄 수도 있었다.
    그가 바로 그 해 겨울에 심장마비로 죽지만 않았더라면.
    캐나다의 민족과 역사 그리고 서구와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문학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이 소설은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중심 플롯에 연결시키며 우리에게 읽는 재미와 삶의 지혜를 풍성하게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