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서 평

윌리엄 골딩-Willam G .Golding-(강우영 역 : 청목사)의 '파리대왕'

靑松 권규학 2017. 7. 22. 23:15
    윌리엄 골딩-Willam G .Golding-(강우영 역 : 청목사)의
    
    ‘파리대왕’을 읽고
    
    
    ‘파리대왕’이라...!
    책장의 한 쪽에 버림받은 듯이 꽂혀있는 조금은 낡은-표지도 찢겨져 나가고 지저분한- 이 책...!
    제목으로 봐서는 분명히 어떤 인물의 일생을 써놓은 소설일거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얼핏 ‘파리 중에 대왕파리’..., 아니면 ‘프랑스의 수도 파리의 대왕’ 등을 연상케 하지만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책의 제목이 풍기는 뉘앙스와는 조금 달랐다. 
    책의 두께도 제법이나 두툼해서 선뜻 읽을 마음이 생기지 않을 그런 종류의 책이었지만, 
    ‘괴도 루팡’이란 추리소설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나로서는 작가소개-이 책의 작가가 원래 추리소설이나 
    괴기소설을 쓰는 ‘윌리엄 골딩’이란 사람이라는 것- 만을 보고나서 단지 추리소설이라는 
    그 하나의 이유에 이끌리어 이 책을 읽게 된 것 같다. 
    평소의 책 읽는 버릇대로 책의 첫 머리에 있는 작가의 프로필을 먼저 보고 
    ‘작가소개’나 ‘작가의 말’을 살피고 난 후, 표지가 찢겨져 나간 책의 첫 장을 넘겼다.
    그런데 처음 보는 책인 듯하여 약간은 부담을 갖기도 했으나 
    몇 장을 넘기다보니 언젠가 한번 읽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처음인 듯한 느낌은 아마 이 책을 처음 대할 당시에는 책의 내용도 잘 파악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야만스런 행동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때까진 젊은(?) 시절이었기에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정도(正道)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친 젊은 시절이었으니까 책 속의 이야기를 두고 ‘저런 무식한 짓이..., 저런 이상한 짓을 하다니...?’라고 
    스스로 욕을 하고 비판했을 것이 뻔하다.
    사실 젊은 시절 한 때 나에게 있어 문명(?)은 삶의 지표였던데 반해 야만(?)이란 단어는 
    한낱 쓰레기같이 사라져야할 인간의 잠재의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 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의문이 갈 정도로 혼란에 빠지곤 한다.       
    도대체 문명이 인간에게 무엇을 주었다는 말인가 ? 
    문명이 제공하는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쾌락에 휩쓸려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있어 
    문명은 오히려 악의 근원이요, 독(毒)일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문명이 제공하는 물질에 휩싸여 정신과 육체를 잊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육체는 쾌락이 아니라 바로 힘이고 건강을 말함이다. 
    언젠가 ‘무탄트’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들...! 
    소위(所謂) 문명인들은 그들을 야만인이라 부르며 괄시하였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고유한 문화를 무시했다. 
    그러나 한 ‘문명인’(?)이 느낀 그 ‘야만인’(?)들은 문명인보다도 더 높은 정신적 인격의 소유자였다. 
    자연을 느끼며, 자연을 자신의 것이 아닌, 그 자연 자체로 보며 살아가고, 
    아주 작은 일에도 고마움을 느끼고, 어떠한 나쁜 일이라도 자신에게 좋은 일로 생각하려는..., 
    그들은 우리에겐 없는 아주 좋은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 ‘파리대왕’을 통해 인간의 잔인성과 야만성을 보긴 했지만, 
    문명이라는 것이 인간 내부의 본성인 ‘야만’을 억눌러 오히려 그 내부에서 더 크고..., 
    정말로 잔인한 ‘야만’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잭의 성가복. 
    잭의 야만성을 무참히 짓밟지만, 매우 커진 ‘잔인한 야만의 힘’을 결국 이기지 못하고,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문명.(사실 이 소설에서도 처음에 성가복이 등장했다가 어느 순간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만일 잭이 무인도에서 살지 않고, 문명세계에서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런 야만이 잭에게서 뛰쳐나왔을 것이다.
    난 ‘순수한 야만’, 즉 ‘인간의 본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그다지 나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인간이 가장 순수한 야만을 보일 때는 어느 때인가 ? 
    그것은 문명에 멍들지 않은 아기 때이다.     
    누군가 말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한 것이다.’라고...!
    그렇다면 인간이 문명에 길들여지지 않은 그 순수한 야만의 시절인 유아기 때가 가장 선할 것이다.      
    결국 그 아기가 자라나면서 겪는 문명의 어두운 면들. 
    그것들이 인간의 순수한 야만을 억누르고 변질시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느낀다. 
    사람이 죽는 장면을 너무 사실적이고 잔인하게 표현-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내용-했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 졌었다. 
    몇 년 전이었던가..., EBS 방송에서 방송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꼬마아이들이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물론 영화에서는 무서운 분위기가 아니라 약간은 어설픈 분위기를 자아낸다) 내가 만약에 무인도에 
    표류되어 저 자리에 서있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행동하고, 또 그 힘든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를 자문자답케 했다.
    정말 상상한다는 것만으로도 놀랄 정도다. 
    처음에 책의 시작 부분에는 무인도에 표류됐지만 아버지가 찾으러 올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으로 
    봐서는 그들이 생존한 친구들을 모두모아 무인도 생활을 이겨낸 후, 나중에 탈출하는 결말을 맺을 것으로만 짐작했었는데, 
    작가는 전혀 엉뚱하게도 서로를 살인하게 하는 아주 야만스러운 결론으로 이끌어 버렸다. 
    언젠가 ‘캐스트 어웨이’라는 무인도 표출이야기를 그린 영화를 보았었는데, 그 사람도 약 2년 만에 무인도에서 탈출한다. 
    그 영화에서는 한 인물이 무인도에 표류해서 공에다가 피로 그림을 그려서 친구를 삼아 2년 동안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사는데 있어 친구라는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 바 있다. 
    그런데 이 책 ‘파리대왕’에서는 그 영화와는 달리 조금은 잔인하고 야만스럽다 할 정도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비행기가 무인도에 난파된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실려가던 소년들은 무인도에서 살게 된다.
    그들은 대장을 뽑고, 산 정상에 봉화도 올리고, 나름대로의 규칙을 만들어 인간답게 살고자 한다. 
    그런데 한 소년은 무인도에서 과일만 먹기를 원치 않는 듯 계속해서 사냥을 고집한다. 
    처음엔 다른 아이들도 동의했지만 구조되기 위한 유일한 연락책인 봉화의 의미를 그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어느 날 멀리서 배가 보인다. 
    대장인 ‘랠프’는 그것을 보고 이젠 살았다는 듯 산 정상을 바라본다. 
    하지만 연기는 피어오르지 않는다. 
    봉화가 꺼진 것이다.      그는 미친 듯이 달린다. 
    불씨조차 남지 않은 봉화로 세 소년이 다가온다. 
    어깨엔 멧돼지를 메고 좋다는 듯 웃으며 다가오는 소년사이엔 봉화를 지키기로 했던 아이들도 있다. 
    대장은 소리친다.     그들을 꼬여 사냥에 데리고 나갔던 그 소년에게..., 소년은 잠시간 상심하지만 
    여전히 봉화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몇 일 후 대장과 봉화를 고집하는 것에 불만을 느낀 그 소년은 무리에서 나가버리고 그를 따라 몇몇 소년도 사라진다. 
    또 한 소년이 있다. 
    그는 나가버린 소년들이 사냥을 하여 먹다버린 멧돼지의 목을 바라본다. 
    파리대왕은 그에게 협박을 한다. 
    그리고 그는 무인도에서 그토록 소년들을 무섭게 했던 것의 정체를 알아버린다. 
    그것은 낙하산과 그것에 걸린 시체였다. 
    그들은 고기를 잡아 남은 소년들을 초대해 자신의 무리에 끼라고 유혹한다. 
    실컷 먹고 나니 갑자기 비가 온다.     그들은 두려워한다. 
    하지만 추장은 춤을 추고,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른다.     소년들도 함께 한다. 
    그때 숲에서 무언가 뛰어나온다. 
    그들은 그것이 자신들을 그토록 무섭게 만들었던 괴물이라 여겨 미친 듯이 짓밟는다. 
    먹구름이 걷힌 후 바닷가엔 그 시체를 발견하고 달려온 소년의 시체가 소금물에 둥실 떠오른다. 
    사냥을 좋아하던 소년은 어느새 추장으로 불리고 모두들 그를 따라간다. 
    남은 건 대장과 생각하는 꼬마돼지 소년, 그리고 쌍둥이...!
    어느 날 그 추장무리들은 불을 피우기 위해 꼬마돼지의 안경을 훔쳐 달아나고, 남은 이들은 말로써 
    그들에게 돌려달라고 요청하지만 커다란 돌이 날아와 꼬마돼지를 절벽에서 밀어버린다.     
    쌍둥이도 그들의 협박을 이기지 못해 그들과 한 무리가 된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잔인한 야만인에 불과했다.        야만인들은 대장을 쫓는다. 
    미친 듯이 도망가는 대장 앞에 뭔가 보인다. 
    장교는 그들에게 묻는다.      죽은 아이는 없냐.   모두 몇 명이나 되냐. 
    대장은 앞으로 나서 두 명의 아이가 죽었고, 모두 몇 명이나 되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장교는 어이없어 한다.      영국의 소년들이 이 꼴이라니....!
    갑자기 추장이 미친 듯이 운다.   대장의 눈에 죽어버린 소년들이 떠오른다. 
    꼬마돼지, 바닷가에서 죽어버린 소년, 숲에서 불이 났을 때 아무도 모르게 죽어버린 꼬마들...!
    이 책을 읽고 심장이 떨려 죽는 줄 알았다. 
    너무나 잔인하게 변해버리는 소년들이 무서웠고, 아무렇지 않게 죽어버린 이들을 잊을 수밖에 없는 
    그들이 무서웠고. 희열을 느끼며 돼지를 죽이던 그들이 무서웠다.
    이 작가는 인간 본성 내부에 숨어있는 우리의 야만적 기질과 그렇지 않은 기질에 대해 잘 쓰는가보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점점 야만인이 되어가는 소년의 변화에서 정말 환경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느낌을 갖게 했고, 
    진정 중요한 것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썩어들어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정말 오랜만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끔 했다. 
    나는 평소에 화나는 일이 있으면 그 화를 마음속으로 꾹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참기 힘들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날 때도 곧잘 참아 넘긴다. 
    하지만 이런 것이 잠재적으로 내 몸 속에 분노나 야만스러움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지만 내게는 다혈질적이고 울컥하는 성질도 숨어있다.
    그런 면이 있는 내가 위급한 상황에 살인이라도 저지를 상황에 처한다면 
    과연 침착하게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물론 살인을 하고 잘 도망가자는 그런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다-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마다 항상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원한다.       
    하지만 이 책 ‘파리대왕’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 책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비극적이고 야만적이다.
    그래서 다른 어떤 책보다도 유달리 다른..., 상당히 많은 의문점을 남겨준 것 같다. 
    나이가 더 먹기 전에 여기서 받은 그 의문이 내 지식으로써 풀릴 때가 빨리 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