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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민서출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靑松 권규학
2017. 7. 22. 22:34
전혜린(민서출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고전혜린...! 32살의 젊은 나이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한 천재 ! 전혜린..., 그녀에 대한 평을 보고 있으면 항시 이 ‘천재’라는 수식어가 뒤따른다. 그렇게 이뻐하는 딸 정화를 두고, 존경해 마지않는 동생 채린을 두고.., 어떻게 자살이란 최악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었는지...? 그녀는 무엇이 그다지도 괴로워 채 꽃피우지 못한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팽개쳐야만 했던가...? 언젠가 그녀의 또 다른 작품...,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를 읽고 소감을 썼던 기억이 있다. 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대단하다. 정말로 대단하다. 문체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가 ‘똑.똑.하.다’라는 느낌을 ‘팍팍’ 가져다준다. 그런데 과연 ‘똑․똑․하․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 마치 ‘이름을 날린다’는 영문 단어인 ‘Famous(유명)’와 ‘Notorious(악명)’의 대치되는 의미처럼 이 ‘똑․똑․하․다’는 말을 있는 그대로 판단해도 좋은 건가...? 괜히 간접적인 표현으로 빙빙 둘러치지 말고 솔직한 표현을 하면, ‘꼭 이렇게 어려운 단어만을 골라 써야만 했을까 ?’라는 느낌이다. ‘자신이 유식하다는 것을 꼭 이렇게 표현해야만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또한 ‘같은 말이라도 단어를 쉽게 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똑같은 표현을 이토록 어렵게 하는 사람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갖게끔 그녀의 문체구성은 약간 어려운 느낌이 들었다. 이 책...,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책의 앞 부문에서는 전혜린의 유학생활을 보여준다. 뮌헨의 슈바빙에서의 생활들...,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먹을 것을 먹고, 날씨가 어떻고 등등,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들인데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꼭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듯한 인상을 주었다. 뭐랄까 ? TV에서 밤늦게 하는 어떤 르포와 같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그런 글이라 할까. 슈바빙에서의 생활들을 묘사한 부분이 너무도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하나하나가 영상처럼, 회색빛으로, 신기하게도 또렷이 그려졌었고, 지금도 그 영상이 꼭 내 눈으로 직접 보기라도 한 듯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단지 그녀가 쓴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만큼 그녀의 표현력은 대단하다. 굳이 세세하게 하나하나를 꼼꼼히 표현하진 않았지만 나에게는 전혜린식의 묘사가 더욱 세세히 그려지는 역할을 한 모양이다. 딸 정화가 태어나면서부터, 그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쓴 부분에서는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딸 정화를 사랑하는 전혜린의 모습이 낱낱이..., 하나의 거짓없이 씌여져 있다. 과연 어떤 맘으로 이렇게도 이쁘고, 또 그렇게 사랑하는 딸아이를 두고 자살을 결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에게도 반발을 일으키지 않는..., 매력있는 질투심을 일으키지 않는 아름다움’을 가진 정화를, 한 아이의 어미니로서..., 그렇지만 지극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어머니는 아닌..., 그런 모습으로 사랑한다. 남자인 나 같았어도 그 이쁜 아이를 그냥 그럭저럭 키울텐데 말이다. 딸 아이의 한 마디에 무슨 정신박사의 책까지 들여다보며, 그 아이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것을 밝혀내는 부분에서는 ‘역시 뭔가는 다르다...!’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동생인 채린에게 보내는 편지는 어떻게 동생에게 저런 감정을 가질 수 있는지. 정말 사랑하는 구나..., 존경하는구나...! 내가 여자가 된다면 나도 저런 누나가 될 수 있을까....? 동생에게 읽어야 할 책도 권해주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고 숨김없이 표현하고..., 한마디로 말하면, ‘보통사람들과는 다르다’는 표현밖에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전혜린 자신도 말한다. 자신은 폐쇄적이고 건조한 성품을 지녔다고...!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콘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자...! 언제나 ‘천재’라는 소리를 무슨 수식어처럼 따라붙게 하는 여자...! 그러나 이 책은 전반적으로 무거웠다. ‘왜 이렇게 살까 ?’라는 생각도 솔직히 수없이 하게 만들었다. 평범한 것이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 ? 누구든 그녀를 말할 때 ‘불꽃같이 살고 갔다’고 말들을 한다. 그런 여자 전혜린...! 불꽃같은 문체, 불꽃같은 생각들...!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있는 자에겐 인심이 박하지만, 망자에게는 의외로 후한 법이다. 그러한 일반론적인 생각을 이 여자..., ‘전혜린’에게도 똑같이 적용하고 싶지는 않다. ‘기차가 굴속에 들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가지 않는 것이 아니 듯’이 비록 그녀는 이미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서 우리가 볼 수 없을지라도 그녀가 남긴 이런저런 작품을 통해 그녀의 천재성을 발견한다.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에..., 그녀는 정말이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그녀의 글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새삼스럽게 그녀의 글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본다. 그녀의 천재성을 본다. 언제나 그녀의 그 천재성이 빛나길 바라며, 이 지면을 통해 그녀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