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서 평

이문구의 '암소'

靑松 권규학 2017. 7. 19. 23:22

 

 

이문구 '암소'를 읽고

 

작가 「이문구」는 1941년 충남 보령 출생으로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66년 「현대문학」에 단편 '백결'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지혈', '이삭', '몽금포 타령', '이 풍진 세상을', '암소', '해벽', '초부', '

으악새 우는 사연'과 장편소설에 '장한몽', 연작장편에 '관촌 수필', '우리 동네' 등이 있다.

 

작가 「이문구」가 다루고 있는 소설의 세계는 전통적인 농촌이나 어촌,

혹은 산업화의 소외지대인 도시의 변두리 등이다.

그 속에서 그는 고향의 정감을 상실해가는 사람들의 애환과 비애,

그리고 그것을 초래한 상황의 모순으로 형상화한다.

그의 출세작인 '관촌 수필'은 작가의 추억을 통해 사라져 버리는, 혹은 사라져 가는

전통적인 고향의 풍경과 정서를 그 특유의 토속어로 포착해 내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농촌사회에 관한 풍부한 디테일과 그 안에 존재하는 인물들이 주고받는

정감어린 인정에 대한 묘사는 사라져 버린 전통적 세계에 대한 최고의 문학적 헌사라고 할 만하다.

'해벽' 등에서도 근대화의 바람에 기형화되어 가는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연작 장편 '우리 동네'는 농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현실도피적이거나

토속적인 요소를 강조했던 기존의 소설들과는 달리 70년대 산업화 속에서 농민들이 겪는

소외와 갈등, 그리고 농촌의 피폐와 해체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농민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 소설 '암소'는 1970년 월간중앙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올해 쉰 둘인 '황구만'은 섣달 눈오는 밤, '선출'이와 나누었던 대화를 생각하고 있다.

마음이 언짢다. '선출'은 그 집 머슴으로 군에 입대하면서 새경을 모아 만든

팔만 원이란 돈을 그에게 맡기고 떠났었다.

그는 그 돈으로 직조틀을 서너 대 장만하여 가내공장을 시작했으나 이내 폐업할 지경에 이르러

제대한 선출에게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도 돌려 줄 수가 없었다.

'박선출'의 입장에서 보면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여기에 주인 '황씨'는 5.16 정권이 들어서며 시작된 농가 고리채 정리기간 동안에

덜컥 신고를 해 버린 탓에 원리금을 몽땅 날린 판이다. 결국 두 사람은 의좋게 합의를 보았다.

'황씨'가 송아지 한 마리를 사 키워 다시 팔아 그 돈으로 부채를 청산하기로 한 것이다.

두 사람은 암소를 극진히 먹여 심하게 부린 날이면 막걸리를 먹여 재우기도 했다.

오늘은 '황씨' 집에 고사가 있는 날이다.

음식을 마련한 '황씨' 아내는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를 소 여물통에 놓아 두었다.

'황씨'와 '선출'은 암소가 밴 송아지의 소유권을 다투고 있었다.

찌꺼기 맛을 본 암소는 헛간으로 가 막걸리 항아리를 몽땅 비우고 쓰러져 버린다.

'황씨'는 죽은 암소에게 달려들고 '선출'이는 몸부림치며 그 곁에서 신세타령 삼아 목놓아 운다.

작가는 생생한 농촌 묘사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소설에서도 그의 묘사력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여기에 암소를 둘러싼 두 인물의 상이한 입장이 치밀한 심리묘사에 의해 덧붙여지고 있다.

'황씨'가 암소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돈에 대한 욕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소를 아낄 수밖에 없는 농민의 심성에 기인한 것이다.

자칫하면 악덕 지주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는 인물에 실감을 부여하는 것은

그의 묘사력이 지닌 치밀함이다.

그의 소설이 지니는 또 하나의 미덕은 충청도 토속어에 대한 걸출한 구사력이다.

인물들의 입을 통해 구사되는 충청도 토속어는 작품 전체를 훈훈하고

여유있는 분위기로 이끈다.

 

이 소설은 농촌의 궁핍한 실상을 다루면서도 건조한 비극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그 안의 인간들이 맺고있는 인간적인 정감이 오히려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풍부하고 다소간 해학적인 언어 구사력에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도 꼭 내 어릴 적 시골 고향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뭐니뭐니해도 뭐니(Money)가 제일이라고 하더니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아니,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길에는 아무래도

경제적 여건이 필수불가결하진 않더라도 행복으로 다가서는 첩경임을 보고

씁쓰레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작품은 복잡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작으나마 신선한 고향의 맛과

인생살이의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