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서 평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靑松 권규학 2017. 7. 19. 18:33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읽고
    
    
    작가  이문열  !         
    아마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누구나 한 번쯤 그의 작품을 접해 보았을 것이다.       
    70∼80년대 한국문단을 풍미했던 그는 
    아직까지도 왕성한 필력을 놓지않고 끊임없는 정진을 계속하고 있다.
    내가 처음 그의 작품을 대했던 때가 아마 1980년대 초였지 싶다.
    그의 중편소설 '사람의 아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뿐만 아니라 
    내 또래의 모든 젊음들은 누구나 한 번쯤 '민요섭'의 이름으로 행동했을 것이다.
    그 후에도 난 그의 작품 몇 개를 더 읽었다.     
    '영웅시대', '황제를 위하여', '삼국지' 등, 아니 또 있다.
    영화를 보고 읽게 된 '젊은 날의 초상'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를 좋아한다.       
    그의 정열적인 집필의지를 사랑한다.      
    모쪼록 그가 언제나 우리들 가까이서 좋은 작품을 써 주기를 바라고, 
    또 여유가 있다면 우리들 40대를 위한 특별한 메시지도 남겨 주었으면 한다.
    '인간은 현재 반역의 본질적인 기회에 착수하고 있다.      
     그것은 은혜의 지배를 정의의 지배로 대치시키는 일이다'
    이 말은 세계질서에 대한 기독교적 정당화의 체계가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는 오늘날의 상황을 지적한 '알베르 까뮈'의 말이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은 바로 이러한 반역의 본질적인 기획을 실현시키려다가 실패한 
    젊은 영혼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민요섭'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하여 근원적인 회의(懷疑)를 제기한다.      
    기존의 기독교적 세계관은 참된 현실을 호도하는 허위의식이라고 정면으로 부정하고 
    새로운 정당화의 체계를 세우려고 시도한다.
    '민요섭'의 기독교적 정당화 체계에 대한 부정은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 아니라 
    모순된 삶을 근원적으로 비판하려는 수단으로써의 의미를 갖는다.
    작가의 속셈은 종교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인 문제에 있었고, 
    그것을 근원적인 시각에서 문제삼기 위해서 기독교의 정당화 체계를 빌어와 
    '민요섭'으로 하여금 부정하게 하였다.       
    그래서 '사람의 아들'은 종교문제를 다룬 듯한 소설이면서도 
    실제로는 사회문제에 궁극적인 관심을 표하고 있음을 느낀다.
    종교 역시 인간이 창조한 문화체계의 일부이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고, 나름대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세계가 있다.    
    자신들이 추구는 세계관·물질관 등을 통해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된다.       
    따라서 서로 추구하는 것이 근본적인 것은 같을 수 있지만 
    그 과정은 서로 상이하므로 여기서 인간은 갈등을 겪게 되는 것 같다.     
    '사람의 아들'인 우리들 역시 신의 문제보다는 인간의 문제를, 
    종교적 진리의 실현보다는 사회적 정의의 실현에 더 큰 문제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