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서 평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雪國)'
靑松 권규학
2017. 7. 15. 21:02
-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雪國)'을 읽고
제목 만큼이나 표지가 하얗고 예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일본인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품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특별한 호기심으로 다가섰다.
책을 읽고 한편의 줄거리가 남았다기보다는 여행을 떠난 친구에게서 받은 것 같은
몇 개의 그림엽서, 아니 그림엽서 속의 그림 몇 개가 남은 것 같은 기분이다.
'시마무라', '코마코', '요오코'
이 세 사람 사이에는 어떤 극적인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갈등이나 해결해야할 문제도 없다.
서로서로 상대방이 있는 듯 없는 듯 행동하기만 할 뿐이다.
소유하고 사랑받으려는 잠재의식은 있지만, 일부러 표현하려 하지 않고
그 관계를 유지시켜 나가기만 한다.
서로가 서로를 비춰주되 거기에 가려지는,
상대방은 보여진다기보다 나의 존재를 보여주는 관계이다.
「문득 그 손가락으로 창 유리에 선을 그었더니
거기에 여인의 한쪽 눈이 확연히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는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건너편 쪽 좌석의 여자가 비친 것이었다.
밖엔 어둠이 깔려있고 기차 안엔 불이 켜져 있었다.
그래서 유리창이 거울이 되었다.
그러나 스팀의 습기로 유리가 온통 수증기로 젖어 있었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닦을 때까지 거울은 없었다.」
거울이란 것으로 존재를 투여하고 비현실성을 부각하고 싶으며
자신을 객관화, 타인화해서 인간존재를 성찰하게 하고 있다.
「그 불꽃은 은하수 속으로 퍼져올라 흩어지고 시마무라는
또 은하수 속으로 떠 올려져 가는 것 같았다.
연기가 은하수를 향해 흐르는 것과는 반대로 은하수가 휙하고 흘려 내려왔다.」
누에고치 창고에 불이나서 '요오코'가 실신해서 떨어지고
'코마코'가 '요오코'를 받아 안는 마지막 부분의 글귀이다.
이렇게 해서 소설이 끝나고 만다.
과연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
'눈, 거울, 은하수, 하늘, 삼나무 숲.'
일상적인 것을 기술하면서 의도하지 않은 듯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작품에서 '헛수고'란 말이 자주 쓰이는 것처럼
'쓸데없음', 즉 무(無)나 공(空)을 말하고 있다.
'쓸데없음'은 무가치가 아니고 인간적 가치로 비현실적이지만 그 자체에 형상미가 있다.
투명한 '덧없음'이라고나 할까.
어렸을 때부터 혈육의 죽음을 보아 온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끊임없이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죽음은 다시 태어나는 죽음으로 인간조건을 식물세계에 도입함으로써
윤회적인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다시말하면
'무저항의 자유로운 삶과 죽음이 정지한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적 상태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일본의 몇몇 풍습과 사상을 제외한다면 우리나라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중에서 공감이 가는 것은 '기생'이었다.
천하다기 보다는 불쌍하고 또 동양여인의 신비로움을 갖추었다는 생각도 든다.
요즈음 흔하디 흔한 윤락여와는 뭔가 다른 느낌을 주었으며,
그때 당시의 일본에 있어서는 그런대로 사회질서를 잡아가는데 있어 괜찮은 제도로 이해되었다.
몸을 파는 직업이지마는 그러기 위해 육체적인 것도 물론 있지만
지(智)를 갖추어야만 좀더 인기있고 대접받는 기생이 될 수 있었고,
몸은 비록 여러 사람에게 허락한다고 하더라도 마음만은 한 사람에게만 두고
그 사람에게는 더없이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보여질 수 있도록
헌신적인 노력을 보이는 모습에서 '순정(純情)', 그 자체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 기생뿐만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사상 역시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리란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기생'이라고 업신여기고 더럽고 천하게만 보았다면
그들에게는 좌절이고 슬픔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국'에는 거울에 비유되는 것이 자주 등장한다.
기차의 유리창과 하얀 눈밭 등, 존재의 불확실성을 나타내고
작품 전체에서 자신을 타인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설(雪)로써 순수함을 부각시키고 아름다움은 순수(純粹)라는 것을 느끼게 하기도 하며,
또 작품의 차분함을 표현하기 위해 식물을 작품과 연관시키기도 한다.
삼나무를 등장시켜 힘없는 인간의 삶, 수직적인 분위기와 윤리적인 삶을 나타내기도 한다.
아무튼 이 책 한 권으로도 서구인들에게
'일본은 동양적인 신비로움이 있고, 여행을 한 번 해 볼만한 나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요즘 우리나라의 서구화 추세와는 다르게 글 전체가 차분하고 깨끗했다.
많은 돈을 들여 관광홍보를 하는 것 보다 이런 책 한 권이면
그보다 더 나은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듬뿍 들게 했다.
앞에서 이미 말했지만 서정적이며 동양의 담채화처럼 여운이 남는,
앞으로도 '시마무라', '코마코', '요오코'의 이야기가 계속 연결되어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야말로 동양적인 정서에 충실하게 쓰여져 한 나라를 세계에 홍보하는 작품으로 높이 평가된다.
한편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도 이런 정도의 작품 하나쯤은 있었으면'하는 바램을 갖게 한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