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서 평
김만중의 '구운몽을 통해 본 서포문학 고찰'
靑松 권규학
2017. 7. 15. 17:53
김만중의
'구운몽을 통해 본 서포문학 고찰'........................서포의 생애와 작품활동 조선 후기의 문신(文臣)이자 소설가인 '서포 김만중', 그는 조선조 예학의 대가(大家)인 '김장생'의 증손이요, 병자호란 때 순절한 '김익겸'의 유복자로 태어나 오로지 어머니 '윤씨'의 남다른 가정교육에 힘입어 성장했는데, 그의 생애와 사상도 어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서포'의 어머니를 흔히 '맹자'의 어머니와 비유하곤 한다. 생활이 어려울 때면 베짜고 수놓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갔으나 학업에 방해가 될까봐 어린 자식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자식교육에 대한 어머니의 헌신적 노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지극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서포'는 1665년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수찬' 등을 역임하고 암행어사로 활동한다. 그러나 임금 앞에서 직언도 불사하는 강직성으로 인해 관직을 삭탈당하고 '김(金)씨 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벌을 받기도 했다. 이후 예조참의로 복귀하여 대사헌을 거쳐 대제학까지 오르는 등의 7년 간은 전 생애를 통해 황금기였다. 그러나 변덕쟁이 임금인 숙종이 정비인 인현왕후를 폐비시키고 장희빈을 세우려 하자 이를 반대하다가 남해로 유배당한다. 유배지에서 숙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쓴 것이 '사씨남정기'이다. 이러한 와중에 그의 어머니 '윤씨'는 아들의 안부를 걱정하던 끝에 병으로 죽었으나 효성이 지극했던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남해의 유배지에서 56세의 일기로 숨을 거둔다. 그의 사상과 문학은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주희'의 논리를 비판하거나 불교적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한 점 등에서 사상의 진보성을 찾아 볼 수 있으며, 그가 주장한 '국문가사 예찬론'은 문학이론에서의 진보성을 보여 준다. '김시습'의 '금오신화' 이후 '허균'의 뒤를 이어 소설문학의 거장으로 나타난 그는 우리 문학사에 획기적인 전기를 가져왔다. 즉 소설을 천시했던 조선시대에 있어서 소설의 가치를 인식, 창작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문학은 마땅히 한글로 써야한다고 주장하여 이후 구 소설의 황금시대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그의 우리말과 우리 글에 대한 국자의식(國字意識)은 높이 살 만하며, 특히 숙종을 참회시키기 위해 쓴 '사씨 남정기' 나 모친을 위로하기 위해 순수한 우리말로 유배지에서 쓴 '구운몽(九雲夢)' 같은 국문소설의 창작은 '허균'을 잇고 조선 후기 실학파 문학의 중간에서 훌륭한 소임을 수행한 것으로 높이 평가된다. ........................저작 동기 및 작품 해설 '서포'가 이 작품을 저작할 당시, 그는 영어(囹圄)의 상태였고, 부친의 분사, 모친의 병환 등 실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의 심정은 그야말로 찢어질 듯한 아픔이 있었지만 서인파의 중진으로서 벼슬을 포기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러나 모친의 병환은 날로 더해가고 가계의 상황은 더욱 절박했다. 모든 것을 청산하고 세상을 등져야 할 체념적 인생관 속에는 변화불측한 꿈만이 남아 있었다. 고향의 소식은 끊기고 몽매간에도 잊을 수 없는 어머니, 그래서 여기에서 '구운몽'이 출발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구운몽'은 모친의 무료함을 덜고 위로할 목적으로 단시일에 저술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로는 3교 화합의 이상화이다. '서포'는 이 현묘하고 심도있는 3교의 이상화를 실제로 정치와 생활에 반영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너무도 없었다. 그래서 3교의 이상적 실천화를 위해 '구운몽'을 저작한 것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인간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에 불과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숙종 때의 몰락해 가는 귀족들의 회고적인 꿈의 세계를 그린 것이다. '구운몽'을 저작할 당시 '서포'는 '사씨 남정기'의 실패로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였다. '서포'는 '유(儒)'로써 입신출세하려 했으나 이미 어렵게 되어 '도(道)'와 '불(佛)'에 귀의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유교의 현실적 실천과 불교의 내세적 이념과 도교의 고답적 도피사상의 각축장을 조성하면서도 결국은 불가의 숙명론적 세계에 귀의케 하는 '성진'의 생애는 곧, 흥망성쇠를 한갓 숙명에 되돌리고 모든 인생의 희비애락을 일장춘몽으로 결론짓는 '서포'의 마지막 패러독스와 연결되고 있으며, 결국에는 이차원의 인생관, 종교관으로 귀일하게 하는 유일의 허무사상, 바로 이것이 '구운몽'의 주제인 것이다. '서포'는 이 작품에서 영원한 안주의 세계를 희구하는 내세주의에 모든 것을 귀결시키고 하락이나 부귀공명도 거부하고 영원한 구원을 열망한다. 전생에 약속한 윤회의 세계로 다시금 돌아가는 인간이 여기에 있다. 즉 주인공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뜻을 꿈속에서 실현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꿈속의 허망한 부귀공명이 일장춘몽이라는 대승불교의 핵심인 공사상(空思想)을 중심으로 유교와 도교의 3교 융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작품은 '현실-꿈-현실'로 바뀌는 과정이나 '양소유'가 8명의 여인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재미있게 꾸몄다. 8명의 여인이 각기 개성을 갖추도록 배려를 하면서 작품에 등장하는 환경 인물 심리를 우아하고 품위있는 문체를 활용하여 세밀하게 묘사해 놓은 점은 이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 다음으로 '어머니 콤플렉스'가 작품의 전면에 나타난다. 선계에서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이 용궁에 가서 술을 마시고 대접을 받고 돌아오다가 돌다리에서 '8선녀'를 만나는 것이 도입부의 '어머니 콤플렉스'로 볼 수 있고, '양소유'가 '토번국'을 칠 때 꿈속에서 용궁에 초대되어 용녀인 '백릉파'와 가연을 맺는 것은 전개부의 '어머니 콤플렉스'라 할 수 있다. 또한 '서포'는 '구운몽'에서 작가 자신의 처지를 간접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주인공들은 '정부인'의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모두 부모를 여의었거나 형제자매가 없다. 유복자 '서포'가 갖는 인간적인 동정은 자신의 슬픔이나 그의 모친 '윤씨'의 고독까지도 생각하여 주인공들이 같은 처지에서 화해를 모색케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서포'의 진보적 사상이 돋보이기도 하는데, '양소유'의 두 부인과 여섯 첩에서 낳은 자녀들은 모두 적자 서자의 구별없이 벼슬을 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 준다. '서포'의 유머 감각 역시 뛰어난데 선의의 속임수를 작품 전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즉 '양소유'가 여장하여 '정소저'를 만나고, '춘운'이 선인 귀신으로 둔갑하여 '양소유'와 정을 맺는다는 점, 또는 '황태후'가 '양소유'에게 '정소저'의 죽음을 거짓으로 알린다던가 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선의의 거짓은 오히려 무의미한 인간 세상에 위트로 나타난다. ........................작품의 주요 내용 중국 당나라 때 남악 형산 연화봉에 서역에서 온 '육관대사'가 법당을 짓고 불법을 베풀었는데 동정호의 용왕도 이에 참석한다. '육관대사'는 제자 '성진'을 용왕에게 사례하러 보낸다. 이 때 형산의 선녀 '위부인'이 '8선녀'를 '육관대사'에게 보내 인사드리려 한다. 용왕의 후대로 술에 취해 돌아오던 '성진'은 '8선녀'와 석교에서 만나 서로 희롱한다. 선방에 들어온 '성진'은 '8선녀'의 미모에 도취, 불문의 적막함에 회의를 느끼고 속세의 부귀와 공명을 원하다가 '육관대사'에 의해 '8선녀'와 함께 지옥으로 추방되고 다시 인간세상에 환생한다. '성진'은 회남 수주현의 '양처사'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양처사'는 신선이 되려고 집을 떠났다. 아버지 없이 자란 '양소유'는 15세에 과거를 보러 경사로 가던 중 회음현에 이르러 진어사의 딸 '채봉'을 만나 마음이 맞아 혼약한다. 그 때 '구사랑'이 난을 일으켜 '양소유'는 남전산으로 피했는데 그곳에서 도사를 만나 음률을 배운다. '진채봉'은 아버지가 죽은 뒤 관원에게 잡혀 경사로 끌려간다. 이듬해 다시 과거를 보러 경사로 올라가던 '양소유'는 낙양 청진교의 시회에 참석했다가 기생 '계섬월'과 인연을 맺는다. 경사에 당도한 '양소유'는 '두련사'의 주선으로 여관(女官)으로 가장하여 정사도의 딸 '정경패'를 만나는데 성공한다. 과거에 급제한 '양소유'는 정사도의 사위로 정해졌는데 '경패'는 '양소유'가 자신에게 준 모욕을 갚기 위해 시비 '가춘옥'으로 하여금 선녀처럼 꾸며 '양소유'를 유혹하여 인연을 맺게 한다. 이 때 하북의 새 왕이 역모를 꾸미니 '양소유'가 절도사로 나가 이들을 다스린다. 돌아오는 길에 '계섬월'을 만나 정을 나누었는데 이튿날 보니 하북의 명기 '적경홍'이었다. 두 여자와 후일을 기약하고 상경, 예부상서가 된다. '진채봉'은 경사로 잡혀온 뒤 궁녀가 되었는데, 어느 날 황제가 베푼 주석에서 '양소유'를 보고 애가 탄다. 까닭을 물어 '진채봉'과 '양소유'의 관계를 알게된 황제는 이를 용서하고, 누이인 '난양공주'와 '진채봉'이 형제지의를 맺는다. 어느 날 밤 '양소유'는 '난양공주'의 퉁소소리에 화답한 것이 인연이 되어 부마로 간택되지만 '정경패'와의 혼약을 이유로 이를 물리치다가 옥에 갇힌다. 그 때 토번왕이 쳐들어와서 '양소유'가 대원수로 출전한다. 진중에서 토번왕이 보낸 여자자객 '심요연'과 인연을 맺게되고 '심요연'은 자신의 사부에게 돌아가면서 후일을 기약한다. '양소유'는 백룡담에서 용왕의 딸인 '백릉파'를 도와주고 그녀와 또 인연을 맺는다. 그동안 '난양공주'는 '양소유'에게 혼약을 거절당해 실의에 빠져 있었으나 '정경패'를 만나보고 그 인물됨에 감탄하여 형제가 되어 '정경패'를 제1공주인 '영양공주'로 삼는다. 토번왕을 물리치고 돌아온 '양소유'는 위국공에 봉해지고 '영양공주', '난양공주'와 혼인한데 이어 궁녀와 만나 동침하는 가운데 '진채봉'임을 확인하게 된다. '양소유'는 고향으로 노모를 찾아가 경사로 모시고 오다가 낙양에 들러 '계섬월'과 '적경홍'을 데리고 오니 '심요연'과 '백릉파'도 찾아와 기다리고 있다. 그 뒤 '양소유'는 2처 6첩을 거느리고 일가화락한 가운데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간다. 생일을 맞아 종남산에 올라가 가무를 즐기던 '양소유'는 역대 영웅들의 황폐한 무덤을 보고 문득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비애에 잠긴다. 이에 인간세계의 무상과 허무를 논하며 장차 불도를 닦아 영생을 구하고자할 때 '호승'이 찾아와 문답하는 가운데 꿈이 깨어나 '육관대사'의 앞에 있음을 알게 된다. 본래의 '성진'으로 돌아와 전 죄를 뉘우치고 '육관대사'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데, '8선녀'가 찾아와 '육관대사'의 가르침을 구한다. 이에 '육관대사'가 설법을 베푸니 '성진'과 '8선녀'는 본성을 깨우치고 적멸의 대도를 얻어 극락세계에 돌아갔다고 한다. ........................서포문학의 문학사적 의의 '서포'는 복잡다단한 생을 살다 갔는데, 그 모진 인생의 종국의 결산이 '구운몽'이라 한다면 '구운몽'은 '위대한 인생 체험기'라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점에서 '구운몽'은 문학사적 가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이 작품은 고대소설 창작에 있어서 전범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시습의 '금오신화'에서 소설문학으로 진입하여 허균의 '홍길동전'으로 일단 진로를 보였을 뿐 그 후 모든 소설이 전기작품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전기적 요소가 불식되고 현실적인 인생문제가 주제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 소설로 인해 우리 고대소설의 형식이 완성되자 바야흐로 영 정조 시대에 들어와 한글소설이 대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옥루몽'과 같은 '몽'자 소설이 유행하기도 했다. 둘째, 작가의 인생관의 반영문제이다. 흔히들 '예술은 인생의 거울'이라고 하고, '소설은 작가의 영상'이라고 하는데 '구운몽'은 '서포'의 생생한 인생축도를 암시해 놓은 것이다. 남아로 태어나서 이루지 못한 인간의 이상을 작품에서 독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명리와 야욕과 여자와 영화가 있고, 종교와 학문이 있다. 이것이 '서포'가 현실에서 추구한 인생관의 전부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서포'는 불교를 위시한 3교사상의 융화성을 역설했다. 셋째, 이 소설이 국문학사상 높은 평가를 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어느 나라 말이든 그 나라 말만이 참된 그 나라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순 한글로 이 작품을 집필했다는 점이다. '구운몽'은 이후의 소설에 영향을 미쳐 이 작품자체를 늘리거나 축소하여 개작한 작품이 계속 나왔을 뿐만 아니라 '구운몽'과 같은 설정을 하면서 다른 사건을 결합시키는 작품들도 대거 등장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고대소설 창작의 전형적인 모범을 제시하여 소설사의 획기적인 전환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고대소설의 대표적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