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시(挽詩)1-떠난 이를 그리며-
만시(挽詩)1*-떠난 이를 그리며- / 청송 권규학
소월*이 갔다
동주*도 갔다
한 세대를 풍미한 걸출한 문웅(文雄)들
누구 하나 피할 수 없는 그 길을 걸었다
형도*도 가고
혜린*도 떠났다
약관·이립(弱冠·而立)의 그 꽃다운
소녀의 초경 같은 선홍빛 젊은 나이에…
어디 그뿐이랴
내가 아는, 알지 못하는 숱한 영웅들
대조영도, 광개토대왕도, 왕건도, 세종대왕도
모두 떠나고 없는 이름 없는 세대
하늘이 맞닿아 끝난 하늘 끝
땅 없는 땅을 밟고 선 이름
수십 년을 문인의 행색으로 살아왔지만
제대로 된 글 한 편 남기지 못한…
나는 죽어서 무엇이 될까
저승에도 가지 못하면
다음 세상에선 무엇으로 올까
슬프다, 아프다, 혼란스럽다
오늘은 왠지 늘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서
마칼바람*의 날개를 붙잡고 싶은.(160116)
* 만시(挽詩)
가족이나 친구가 죽었을 때 쓰는 추모시(追慕詩).
'자기의 죽음을 가정하여 쓰는 시'를 '자만시(自挽詩)'라고 함.
* 소월
김소월(金素月, 1902~1934) 시인. 평북 구성 출생.
본명은 정식(廷湜). 1920년 '창조'에 ‘낭인의 봄’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
* 동주
윤동주(尹東柱, 1917~1945). 북간도 출생.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 재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
* 형도
기형도(奇亨度, 1960~1989) 시인. 인천 옹진 출생.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 당선. 1989년 29세에 종로 파고다극장에서
심야영화 관람 중 뇌졸증으로 사망, 유고시집으로 '입속의 검은 잎'이 있음.
* 혜린
전혜린(田惠麟, 1934~1965), 수필가/번역문학가. 서울대법학과 입학, 독문학으로
전공을 전환 후 독일에 유학함. 1959년 독일 뮌헨대학 독문학과를 졸업/조교 근무.
1956년 법학도인 김철수(金哲洙)와 혼인, 1959년 5월 귀국 후 경기여자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이화여자대학교의 강사, 1964년 성균관대학교 조교수로 근무.
펜클럽 한국본부 번역분과위원 위촉/활동하다가 1965년 1월 31세로 의문의 자살
* 마칼바람 : 북서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