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자작글

영웅(英雄)을 만나다

靑松 권규학 2015. 11. 3. 19:39

 

 

영웅(英雄)을 만나다 / 청송 권규학

 

 

저수지 한가운데

아름드리 왕버들 한 그루

인류가 태동하기 전부터

그렇게 살아 있었나니….

 

물 안개 자욱한 풍경에

마음은 저절로 숙연해지고

옛날하고도 아주 오랜 옛날

공룡이 살았던 지구의 모습을 본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들의 오래전 조상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함께해 온 물

 

그 물에서 살았던 생명들

그 물로 농사를 지었던 조상들

그 물과 더불어 삶을 누린 모든 것들

진정 너희가 참된 영웅이었나니.(151103)

 

 

어느새 11월, 동짓달이다.

이제 달랑 두 장의 달력만 남긴 2015년,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한 해를 마무리하려는 사람들로 온통 북적거린다.

거창하게 세운 년초의 계획들을 하나둘 되돌아보고,

잘한 것은 무엇이며, 또 잘하지 못한 것은 어떤 것이었는지

저마다 마음속 주판알을 튕기기에 바쁘다.

우리는 흔히 손가락을 꼽아 1순위에 오른 것만을 최고라고 인정하는

잘못된 인식이 깊다.

물론 1등이라고 하는 것은 가볍게 보고 넘길 사소한 것은 아니지만,

그 1등을 있게 한 2등과 3등, 그리고 더 많은 탈락자의 존재를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어디 그런가?

42.195km를 달리는 수많은 마라토너가 그 먼 거리를 완주하지만,

단 한 사람의 1등을 만들고자 그렇게 힘든 달리기를 하지는 않는다.

가끔은 2시간대를 주파하는 세계적인 선수들도 있지만,

3시간, 4시간대의 성적을 올리는 사람들도,

5시간 이상 10시간에 육박하는 긴 시간을 달려 완주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결코 1등이란 순위싸움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참가하는데

의의를 가진다는 걸 알고도 남음이 있다.

현실은 그들의 노력과 수고를 간과하고 있다.

오로지 1등을 해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은메달, 동메달을 따서

비로소 그들의 존재에 관해 관심을 높이려 든다.

지나친 서열 위주의 가치판단 기준은 오늘날 우리 인류에게 있어

-특히 대한민국-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1등도, 2등도, 3등도 좋지만, 순위에 입상한 그들보다도

체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해내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영웅인 것이다.

 

문학계 역시 다르지 않다.

연말연시가 되면 특히 그런 시대 풍조가 만연해진다.

일명 '신춘문예(新春文藝)' 열풍이 바로 그것이다.

'등단'이란 것, 그것도 일류 매체를 통해 화려하게 등장함으로써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려는 사람들, 그들은 과연 좋은 글을 써서

독자들의 마음을 호사시키려는 것인지, 아니면 문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 스스로 위치(?)를 높이려는 것인지

새삼 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나는 과연 어떤 부류에 속하는 걸까?'

 

따지고 보면

나는 문인이란 이름으로, 시인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럴듯한 매체를 통해 이름을 알린 것은 아니다.

'시를 씁네, 수필을 씁네'

나름의 허명(虛名)과 허상(虛像)만 드러났을 뿐

관록 있는 기관으로부터 이렇다 할 인정을 받은 적도 없고,

남들이 숱하게 받은 제대로 된 문학상 한 번 받은 적도 없는,

그저 문인 아닌 문인에 이름을 올린 무명 소졸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누구나 도전하는 '신춘문예(新春文藝)'에 도전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한 마디로 나도 모르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뒤편에 도사리고 있는 공포, 그것은 곧

하릴없이 도망가 버린 문예창작에 대한 자신감의 실종이다.

매년 숱하게 많은 매체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하는 신인들,

그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곤 한다.

심사평마저도 세상의 모든 좋은 말들의 집합체다.

솔직히 말해서 알아듣지도 못할 어려운 단어들로 포장하여

당선인들을 미화하기에 바쁘다.

뿐만 아니라 당선된 작품들 또한 아이러니하다.

모든 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마디로 대부분의 작품이 몹시 어렵다.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수필인지, 산문인지, 운문인지….

차라리 소설이라고 해야 할 작품들이 버젓이 시(詩)랍시고,

그것도 지금껏 보지 못한 수작(?)의 이름으로 신문 지상을 장식한다.

어쩐 일일까?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우리 선배들의 아름다운 서정의 미(美)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근본 없는 망나니 글들이 문단을 지배한다.

'현대 시', 정녕 현대 시의 등장이 우리의 문학을 죽게 했는가?

도대체 어떤 표현이 그렇게 심오하고

또 그토록 아름다운 '절제된 표현의 미학'이란 걸까?

어쩌면 그리 수준 있는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탓해야 하는 게 먼저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수준을 파악하지도 못한 채 감히 수준 높은 그들을 깎아내리고

매도성 덤터기를 씌우는지도 모를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도무지 모르겠고, 정말 알 수가 없다.

어떤 것이 산문이고, 또 운문인지…. 소설은, 수필은, 시는, 동시는...?

하잘것없는 실력으로 수필을 씁네, 시를 씁네 하며 우쭐댔던

자신을 반성하는 기회로 삼는다.

그런데도 쉽게 필(筆)을 놓지 못하는 건 또 무슨 연유일까?.

단 하루도 필(筆)을 잡지 않고 자판을 두드리지 않으면 몸살이 난다.

누가 그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글을 읽어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가진 허영심에 불을 붙이는 것에 불과하다.

거들먹거리며 남들에게 글 쓰는 이로 행세하려는 졸장부 기질의 반증이다.

 

대한민국의 문인은 모두 몇 명이나 될까, 10만, 20만…?

누군가 내게 그랬다.

길을 가다가 뒤에서 '시인님!' 하고 부르면 열에 5~6명은 돌아본다고…!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 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필(筆)을 놓기는커녕

점점 더 창작의 길에 매진하는 나를 보며 실소를 머금곤 한다.

어쩌면 나 역시도 영웅이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

별 의미도 없는 단어 하나 별빛으로부터 빼앗아 앉히고는

누군가 매혹적인 눈빛으로 쳐다봐 주길 바라는….

그래서 내가 쓰는 글은 모두가 훔친 글일 수밖에 없다.

저작권 한 푼 내지 않고 남의 글을 내 글인 양 무한정 도용을 하고

하늘의 달과 별, 들녘의 풀, 산속의 나무와 곤충들을 내 마음대로

가져다 쓴 도둑놈 중에서도 가장 용서 못할 지식 도둑놈이다.

이런 나에게 누가 매서운 매를 내릴까?

'너는 나쁜 놈'이라고

'너는 정말 몹쓸 놈'이라고 따끔한 충고라도 해 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쓴 탁배기 한 잔이라도 대접하련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깨어진 유리잔일 뿐'이다.

 

영웅을 찾으러 온 들녘에 영웅은 없었다.

깜깜한 어둠뿐인 밤하늘에서 영롱한 별을 발견하듯이,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제대로 된 영웅을 만나길 기대할 수밖엔….

오늘도 하릴없이 올려다본 하늘엔 무수한 별이

서로 더 빛나 보이려고 별빛 경쟁에 여념이 없는.(15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