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자작글

사랑하고 싶은 날

靑松 권규학 2015. 11. 1. 14:19

 

 

사랑하고 싶은 날(2) / 청송 권규학

 

 

비가 내린 후

바람에 가을 향기가 묻어납니다

저수지엔

가을 빛깔이 가득 담겼고

논둑길을 걷는 내내

가을이 종종걸음으로 따라옵니다

 

문득 사랑하고 싶어집니다

이 가을이란 계절을 사랑하고

어떤 참한 여인을 사랑하고

풀과 꽃과 나무와 곤충과 숲

그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어집니다

 

내린 빗물이 고여

바짓가랑이에 흙물이 튀어 오릅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이런 날엔 누군가 찾아올 것 같은 느낌

그 사람,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라풀*이 점점이 찍힌

저수지 물가를 바라봅니다

자라풀 사이

초췌한 몰골의 내 얼굴이 비칩니다

왠지 유치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생각

그래요

아마도 사랑이란 말은 접어야 할 듯싶습니다

 

정말이지 그래도 좋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이 있고

이토록 아름다운 산과 들이 있고

너와 나, 우리를 비추는 저수지가 있기에

그래서 사랑할 수도 있을 듯싶습니다

모든 욕심을 털고 서로 아우를 수 있는 그런.(151101)

 

* 자라풀

자라풀과의 단자엽식물이며,

땅속줄기나 종자로 번식하는 수생식물이다.

잎의 겉면이 자라의 등을 닮아서 '자라풀'이라고 하며,

일명 '수련아재비'라고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