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田園日記)8-반딧불이-
전원일기(田園日記)8 -반딧불이- / 청송 권규학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요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라 했습니다
가는 비(細雨) 내리는 저물녘
전원(田園)의 뜨락에 앉아 생각의 나래를 펼칩니다.
나는 반백 년 삶을 어떻게 살았는가.
경거망동하며 화합을 그르치진 않았는가.
나만 옳다고 고집하며, 다수 의견을 무시하진 않았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그리 살았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많은 말을 했습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내 주장만 내세웠습니다.
혼자만 잘난 척 크게 떠들면서
상대방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면 입을 다물고 지갑을 열라고 했거늘
지갑은 꾹 닫아 둔 채 세 치 혓바닥은 왜 그리도 많이 놀렸을까.
부끄러움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반성하는 중에도
생경한 자만심이 다시 또 고개를 쳐듭니다.
다수가 옳다고 하여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고…
다수가 그르다 하여 반드시 그른 것도 아니라고…
그렇기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타인의 의견에 좌지우지되지 말고
자신의 신념으로 판단하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라고…
그리고 또 그러고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진실로 말하거니와
가슴 깊은 신념에서 나오는 '아니오'는
순간적인 위기를 모면하고자
다른 이를 기쁘게 하는 '예'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는…
나도 몰래 나를 두둔하는 무언(無言)의 변호(辯護)
하지 않아도 될 말과 행동이 속절없이 튀어나옵니다.
인간이란, 참으로 쓸데없는 속물인가 봅니다.
문득,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거뭇거뭇 구름 사이, 철새들의 유영(遊泳)이 있을 뿐
깜깜한 밤하늘엔 아무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순간 눈앞에 떠오른 희망의 불꽃
물안개 자욱한 풀숲에서 한 줄기 빛이 피어오릅니다.
뭘까.
어릴 적 시골에서는 그렇게 많이 보고 또 보았건만
요즘엔 청정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던 그 불빛
모락모락 몽글몽글
긴 꼬리 여운을 남기며 명멸하는 작은 불빛
바로 주경야독의 주인공인 개똥벌레, 반딧불이었습니다.
공부하라고 또 공부하라고 다시 또 공부하라고
형설지공(螢雪之功)의 절학을 터득하라시던 부모님의 얼굴이
신형원이라는 대중가수의 노래하는 얼굴과 겹쳐집니다.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무덤이 내 집인 걸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 번만 노래를 해주렴
나나~나나나나 쓰라린 가슴 안고
오늘 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
마음을 다 주어도 친구가 없네
사랑하고 싶지만 마음뿐인 걸
나는 개똥벌레 어쩔 수 없네
손을 잡고 싶지만 모두 떠나가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 번만 손을 잡아주렴
아아~ 외로운 밤 쓰라린 가슴 안고
오늘 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
울다 잠이 든다
작은 소리로 2절에, 후렴까지 또박또박 불러보았습니다.
가을이란 계절과 어울려 한바탕 춤을 추는 노랫말이
누군가의 떠나감을 일러주는 듯해서 마음이 짠해집니다.
순간, 가슴 시리게 다가서는 이 쓸쓸함은 또 뭘까요.
반짝반짝, 가늘게 명멸하는 불빛이 왠지 나를 부르는 듯해서
나도 몰래 달려나가 불빛을 따라 손을 휘저어봅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사라지는 아름다운 불빛
'석별(惜別)의 정(情)'이란 원곡을 개사하면서
'개똥벌레'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게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한동안은 제자리에 못이라도 박힌 듯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아련한 추억의 공간을 헤매다가 투둑투둑-,
조금 더 굵어진 빗소리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내릴 듯…, 하늘도 미리 예고하는 듯합니다.
흐트러진 자리를 정리하고선 농막(農幕)으로 들어섭니다.
후텁지근한 열기가 어느새 냉랭하게 돌아섰습니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 행여 감기라도 들까.
전기 판넬의 스위치를 켜고 이불을 챙겨 덮었습니다.
따뜻한 열기가 온몸으로 퍼집니다.
지금 잠을 청하면 꿈나라로 직행할 수 있을까.
꿈속에서 다시 또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을까.
마음을 추슬러 잠을 청합니다.
두 눈 가득 전해지는 반딧불이의 명멸하는 불빛을 따라
동화의 나라 여행을 떠날 수 있길 기대하면서.(150921)
* 君子 和而不同 , 小人 同而不和
'군자는 타인과 화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타인과 뇌동하되 화합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논어의 자로(子路)편에 나오는 공자님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