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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田園日記)3-엄살-

靑松 권규학 2015. 7. 27. 10:59

 

 

전원일기(田園日記)3 -엄살- / 청송 권규학

 

 

하루가 멀다고 거세게 반항하는 잡초들의 궐기,

전원(田園)의 하루는 잡초들의 선전포고로부터 시작된다.

약초 밭을 매고자 종일토록 허리를 구부려야 했다.

삐질삐질, 밀짚모자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

금세 밀짚을 노랗게 물들이고도 모자라 온몸을 흠뻑 적시고 만다.

아니나 다를까.

찌르르-, 꼬리뼈를 타고 척추까지 통증이 전달된다.

그래도 허리를 펼 수가 없다.

밭둑의 호박과 상추밭, 도라지에 물을 줘야 하고,

오이 덩굴에는 그늘막을, 불쑥 큰 고추엔 지지대를 세워야 한다.

주말마다 부지런하게 움직였는데도 쪽파 종묘 거둘 시기를 놓쳐버렸다.

 

어디 그뿐이랴.

마른 겨울초의 씨앗을 거두고, 들깨 모종도 이식해야 하고, 열무도 파종해야 하는데…

손바닥만한 농지(農地)인데도 도무지 짬이 나질 않을 뿐더러,

찾아온 지인(知人)들과 담소를 나눌 시간조차 없다.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는데 어찌 아프다는 말이 나올까.

말 한마디 못하고 꼬부랑 할아버지 자세로 거북이걸음을 걷는다.

그렇게 아팠던 통증이 어느 순간 사라진다.

완전히 나은 게 아니라 그냥 잠시 잊은 것뿐,

밤이면 또 끙끙 앓는 소리로 잠을 청할 것이며,

허리를 눕히자마자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어찌보면, 전원생활(田園生活)은 한 폭의 수채화를 닮았다.

모든 걸 태울 듯한 태양이 내리쬐다가도

금세 구름이 끼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마치 우리 삶과도 같은…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과거의 삶과 좀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내가 처한 지금의 순간보다 더 좋은 삶을 살았을까.

아니면, 보잘것없거나 형편없는 삶을 살고 있을까.

이순(耳順)의 세월을 되돌아 본다.

얼핏,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순간이 떠오른다.

설핏, 스쳐 지난 일들이 특별한 추억으로 다가선다.

그런 지난 삶의 추억이 있었기에

그런 수채화 같은 풋풋한 날이 있었기에

지금의 충만한 시간을 채울 수 있으리라.

힘들 때마다 마음을 다독이는 소중한 기억들,

한 땀 한 땀, 촘촘히 수를 놓아 가슴 한복판에 담아두고

한 올 한 올, 올올이 풀어내어 보고, 듣고, 맛보고

흙냄새를 맡으며 기꺼이 온몸으로 즐기고 싶다.

 

산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죽는다는 건 사는 것보다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는다는 것…..

그것을 안다는 것은 인간으로선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스스로 택한 이러한 삶을 사랑하고 싶다.

온몸이 힘들고 고달프지만,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는

감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땀방울로 일그러진 얼굴에 살포시 미소가 번진다.

개인 듯, 개 아닌, 개를 닮은 들고양이(양순이)의 애교 덕분에.(15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