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자작글
봄을 기다리며(2)-봄밤-
靑松 권규학
2013. 1. 31. 20:33
봄을 기다리며(2)-봄밤- / 청송 권규학
붉은 햇살이 꽁꽁 언 땅을 들어 올리는
봄(春), 봄이란 계절
낮이면, 온 세상이 요동치는 듯하다가도
밤이면, 눅눅한 암흑천지
적막강산의 먹먹한 어둠이다
하도 깜깜해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도
달빛 스러지고
동녘에 먼동이 훤히 밝아오면
그때부터 봄은, 그 지랄 같은 봄은
또다시 오두방정을 떨어 제친다
이웃 동네 과수댁의 가슴팍엔
발정이 난 짐승이 돌아다니고
우리 동네 홀아비의 귓밥 사이에선
귀뚜라미 소리, 앵앵거린다
앞집 총각의 코가 벌름거리고
뒷집 처녀의 가슴이 방망이질 친다
한동안 지랄발광을 떨고 나면
시린 달빛이 뜨거운 태양을 집어삼킨다
다시 밤이다
뼈와 살이 타는 봄밤
외양간에선 황소가 킁킁거리고
마굿간에선 망아지가 히히덕거리고
과수댁의 가슴 간에선 귀뚜라미가 울고
홀아비의 귓밥에선
짐승이 으르릉거리며 머리를 들이댄다
모든 생명이 지지리 궁상을 떨며
숨김없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늘 그렇다, 봄밤엔
마치, 추운 겨울을 견딘 축복이라도 되듯이.(13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