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자작글
겨울, 을숙도(乙淑島) 갈대숲에는
靑松 권규학
2012. 12. 24. 18:54
겨울, 을숙도(乙淑島) 갈대숲에는 / 청송 권규학
갈대숲에는 오랜 추억이 산다
숨은 추억을 찾아내려고
길섶에 오래도록 앉아있거나
혹은 서성이듯 걸어도 본다
노을빛이 젖어드는 시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겨울 하늘
노을에 그을린 갈대의 어울림
문득
해맑은 눈동자의 옛 소녀가 떠오른다
갈대숲에는 물빛 순정이 숨어있다
그래서 낭만의 숲인가 보다
갈대숲을 걷는 내내 꿈을 꾼다
비릿하고 풋내나는 꿈
오랜 추억을 풀무질해댄다
갈대숲에 바람이 분다
바람은 그냥 스치고 지나면 그뿐이지
사브작사브작 갈대의 몸뚱이를 비벼대기는…
서걱이는 잎새 사이로 햇볕이 스며든다
노을빛이 비치면 손을 내밀면 그만이지
꼿꼿이 갈빗대를 맞대고서
쉴 새 없이 몸뚱이를 비벼댈 것까지야…
갈대숲에 눈이 내린다
눈이 오면 그저 갈잎 사이로 흩어지고 말 일이지
마른 살결에 차가운 눈(雪)을 촉촉이 쌓을 것까지야…
갈대숲에 어둠이 내린다
캄캄한 밤이 오면 느긋이 잠들고 말 일이지
초롱초롱, 두 눈을 치켜뜬 채
을숙도 밤하늘에 하얀 별을 띄우려 할 것까지야.(12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