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자작글

목련이 필 때면

靑松 권규학 2012. 4. 7. 10:15

 

 

목련이 필 때면 / 청송 권규학

 

 

목련이 필 때쯤이면

한 세상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먼 곳, 하늘나라로 떠난 누이를 생각한다.

잎도 피기 전, 꽃으로 피었다가 금세 흐드러져 떨어지는 목련 꽃잎처럼

살아보겠다고, 더 잘 살아보겠다고, 자식새끼 줄줄이 옆에 달고

윗입술, 아랫입술 깨물며, 그토록 모진 삶을 살았던 누이

 

난소암, 그 듣도 보도 못한 불치의 암세포가 온몸을 찍어누르고

혈관을 흐르는 붉은 피가 한 모금 또 한 모금,

말라비틀어진 몸을 떠나 황폐한 땅덩어리로 스며들었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천만 마리의 벌레가 거친 살갗을 뚫고 나오는 고통,

똥파리가 슬어놓은 알 무덤에서 한 무더기로 우글거리는 구더기들,

그것들도 몸뚱이 구석구석을 헤집으며 놀고 있었다.

 

그 숱한 고통을 잊으려 그녀는 떠났다.

메마른 눈가에 눈물을, 아니, 피를 짜내며 그렇게 떠났다.

'오빠, 내 아이들을 부탁해요.'

제대로 된 목소리도 아닌, 혼신의 힘을 다해 토혈을 쏟아낸 채

쪼글쪼글한 무말랭이 조각처럼 그렇게 먼 길을 갔다.

목련이 피는 춘삼월, 그 어느 날에….(120407)